' 삼국지 '의 주전략: 이이제이( 以夷制夷 )

파워 boolingoo
2009.06.26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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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주전략:이이제이(以夷制夷)



닉슨·마오쩌둥·저우언라이(朱恩來 : 주은래) 비밀 대화록(1972.2)

'삼국지'의 주전략:이이제이(以夷制夷)


들어가는 글

우리나라는 국제정치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중국은 역사적으로 우리의 외교 정책이나 대내 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강대국입니다.

그런데 이 중국인들을 우리는 제대로 알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중국인들과 가까이 지낸 사람일수록 중국인들을 점점 더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제가 보기에 나관중 ‘삼국지’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알기 어려운 중국인들의 본 모습을 파악하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즉 중국의 외교정책이라는 거창한 주제에 대해 바로 접근하기보다는 나관중 ‘삼국지’를 통해서 중국인들의 대외정책이나 국제정치적인 전략 전술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 있고 유익할 것이라는 말이죠. 중국의 외교술을 이해할 만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2003년 한국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 때의 일입니다. 노대통령이 중국인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고 귀국할 즈음 북한에서는 ‘중조(中朝)우호협력조약 체결(1961년 중국과 북한의 조약) 42주년 기념 연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중국 대사는 “중조우호협력조약은 국제적인 풍운(風雲)의 변화 속에서 이 지역 평화를 지키는 데 결코 마멸(磨滅)될 수 없는 중대한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다.”라고 축사했고 이에 북한의 대표는 “선혈(鮮血)로 맺어진 조선과 중국 간의 우의는 계속 공고히 발전할 것”이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중조우호협력 조약에는 이른바 자동개입조항이 포함되어 있는데 구체적으로 이 조약 제4조는 “쌍방 가운데 일방이 외부의 침공을 받았을 때 다른 일방은 즉각 개입해서 지원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북한이나 중국 가운데 한쪽이 특정 국가의 침공을 받으면 즉각 자동 참전한다는 조항입니다. 문제는 중국이 이런 자동개입 조항을 두고 어떻게 한국과 국교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이에 대해서 중국 외교부 관리들은 “무슨 문제가 있느냐? 한국(남한)이 조선(북한)을 공격하는 일은 없을 것 아니냐… 북한이 한국을 공격할 우려는 있겠지만 조약에 ‘쌍방 중 일방이 침공을 받을 경우’라고 되어 있으므로,

쌍방 중 일방인 북한이 한국을 공격할 경우 중국에는 자동 개입의 의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아슬아슬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03년 여름 중국 외교부 정례 뉴스브리핑에서의 일입니다. 우리 기자가 “7월 27일은 한국전쟁 휴전협정 체결 50주년 기념일인데 현재 열정적으로 한국대통령을 접대하고 있는 중국은 이 기념일을 한국과 북한 어느 쪽과 함께 기념할 것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우물쭈물 하다가 “우리는 두 나라 모두와 아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며 한·중 수교는 11년 전 ‘구동존이’(求同存異 : 이견은 남겨두고 일치되는 의견을 우선 추구함)의 정신으로 이뤄졌다는 요지의 대답을 합니다.

이상의 이야기들로 보면 중국은 제갈량처럼 남북한을 사이에 두고 외교를 잘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중국이 이 같은 외교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강한 국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만약 약한 나라가 이 같은 등거리 외교를 하면 위험한 곡예가 되겠지만, 중국같이 강한 나라가 등거리 외교를 하면 남북한은 하나같이 중국의 꼭두각시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면 중국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이이제이 전술들이 나관중 ‘삼국지’에는 어떤 식으로 나와 있는지를 한번 봅시다.

(1) 이이제이(以夷制夷)

이이제이(以夷制夷)란 적을 이용하여 적을 격파한다는 말입니다. 이 전술은 중국인들이 즐겨 쓰는 것인데, 이 전술을 사용하기 전에 많은 준비와 연구가 필요합니다.

즉 적군들이 다수 존재할 때 그들 사이에 갈등 요소를 철저히 분석하여 그것을 전술적으로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나관중 ‘삼국지’ 내용의 상당 부분은 ‘이이제이’ 전술의 경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중국인들은 전쟁이란 용맹(勇猛)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용맹으로 말하면 중국 주변의 유목민족들을 따라갈 수가 없으므로 꾀로써 이들을 제압하여야만 하는 것이죠. 그래서 중국인들은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거나 적으로서 적으로 제압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묘책(妙策)으로 봅니다.

‘이이제이’라는 말이 과연 어떤 경로를 통해서 사용된 것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이(夷)라는 말은 우리 민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말인 것은 분명합니다.

제가 보기에 중국의 동북부 또는 중국의 동부 해안 지대에 다수 거주했던 쥬신족들(중국인식으로 말하면 동이족)을 제압할 때 사용했던 말 같습니다. ‘이이제이’ 전술은 쉽게 제압하기 힘든 강자를 제거할 때 사용하는 계책으로 고도의 이간계(離間計)이기 때문이죠.

이 말을 냉정히 따져보면 이들 동이족(쥬신족)들은 이간계에 쉽게 넘어가는 특성을 가졌다는 말은 아닐까요? 동이족(쥬신족)들이 아무리 활을 잘 쏘고 강병(强兵)을 가지고 있으며 호방하지만,

중국인들은 이들이 직선적이어서 남들이 부추겨 세우면 쉽게 우쭐하고 인정에 약하고 남의 말에 잘 속는다는 점을 간파한 듯합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이들을 잘 구슬러서 이간질하면 쉽게 중국에 호응하는 특성을 발견한 것은 아닐까요?

나관중 ‘삼국지’에 나타난 전술들은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이간질을 통하여 적의 내부분열을 꾀하고 서로 싸움을 붙여 적으로 적을 격파하면서 세력이 약화되면 둘 모두를 섬멸하는 중국 고유의 전술이 구체화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적의 세력이 강하면 설령 아군이 절대적인 우위에 있더라도 전쟁 자체로 인하여 많은 피해가 예상되므로 적들을 서로 교란시켜서 어부지리를 취하는 동시에 적이 약화된 틈을 노리는 전술은 어떤 의미에서 가장 고전적인 중국인들의 전술이라고 할 수 있죠.

이상을 통해서 보면 중국인들의 전술을 이해할 수 있는 코드를 어느 정도는 제시할 수 있을 듯도 합니다. 이것을 중국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36계의 개념들을 이용하여 한번 이야기해봅시다.

중국인들은 자신이 약하다고 판단이 될 때, 또는 자신의 주변에 큰 세력들이 있을 때,

① 욕속부달(欲速不達 : 절대로 서두르지 말고)이나 선수필승(先手必勝 : 어떤 경우라도 상대방보다 앞서서 일을 착수하고 추진한다) →

② 소리장도(笑裏藏刀 : 웃음 뒤에 칼날을 숨긴다. 즉 자신의 책략이 어떤 것인지 철저히 감추고 우호적으로 대한다) →

③ 혼수모어(混水摸魚 : 흙탕물을 일으켜 정신이 산란해진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것) 하거나 지상매괴(指桑罵槐 :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하다. 즉 상대방에게 들으란 듯 다른 사례로 협박하는 것) →

④ 차계생단(借鷄生蛋 : 즉 다른 사람의 닭을 빌려서 알을 낳게 한다) →

⑤ 차도살인(借刀殺人 : 남의 칼을 빌려 다른 사람을 죽인다. 즉 남의 힘으로 나의 적을 죽인다) 등의 전략으로 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의 근저에는 한족의 가장 전통적인 외교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원교근공(遠交近攻)이죠. 즉 가까이 있는 적은 공격하고 멀리 있는 적들과는 화친정책을 편다는 말이죠.

사실 가까이 있는 나라들은 여러 가지 이해가 교차하기 때문에 사이가 좋기 어렵습니다. 북한과 중국이 혈맹 운운하면서 친한 듯해도 신의주 특구 사건(행정장관 양빈 체포)에서 보듯이 가까워지기에는 한계가 있지요.

군사적으로도 가까운 곳에 적을 둔 상태에서 먼 곳의 적을 공격하기가 어렵죠. 그래서 가까운 적은 공격하고 먼 곳의 적과는 친하게 지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 중국과 미국이 매우 가까워지는 것은 우리에게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원교근공의 전략에 따라 가까운 적을 공격할 때 사용하는 하나의 신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한반도 상황에서도 예외는 아니지요. 중국은 한반도에 대하여 여러 가지 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남과 북이 나눠져 있으므로 중국은 중국이 가진 고유의 전술들을 유감없이 발휘해 낼 수 있습니다.

즉 중국은 미국 - 일본 - 러시아 - 남북한 - 대만이라는 얽히고 설킨 난맥상의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 궁극적으로 미국과는 여러 면에 있어서 원만하기가 어렵지만 남북한은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장기적으로 중국은 정치 경제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을 통해 미국과 한국을 견제할 수 있으며 러시아를 통해 일본이나 미국을 견제할 수 있겠죠.

현재의 동북아시아 상황에서 중국은 굴갱대호(- 굴을 파고(유비를 이용하여) 호랑이(여포)가 올 때까지 기다려 호랑이가 굴로 들어가면 사로잡는 방법)나 이호경식지계(- 두 마리의 호랑이가 서로 다투어 잡아먹게 하는 계략. 즉 호랑이 두 마리를 이간질하여 서로 싸우게 만들어 큰 상처를 입으면 즉각 공격하여 두 마리 모두를 죽이는 전술)에 사용할 카드를 많이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걱정이지요.

(3) 이이제이(以夷制夷)의 거시적 의미

역사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동아시아는 중국을 상징하는 용과 유목민(대쥬신)을 상징하는 봉황의 용쟁봉투(龍爭鳳鬪)의 양상을 띠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유목민(대쥬신)들은 유목(遊牧)을 하는 관계로 워낙 넓은 지역에 분포하므로 그 공통성을 많이 상실한 상태이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근접한 민족들조차도 교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중국을 중심으로 국제질서의 축을 형성해 왔습니다.

동북아시아의 양상을 보게 되면 대쥬신족(알타이 서쪽의 동북방 유목민)들은 한족(漢族)에 대하여 몽골-동북지역-한반도-일본 등에 이르는 거대한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들의 위협에 대하여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법을 사용하여 이들의 세력이 결집되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은 한나라 이후 지속적으로 나타난 전략이었습니다. 만약 한반도에 위치한 왕조를 한화(漢化)하게 되면 대쥬신의 기둥뿌리가 중간에서 잘리는 형상이 됩니다.

한반도가 유난히 중국화가 극심하게 된 점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중국의 역대 정권이 예외 없이 한반도(韓半島)의 왕조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보인 것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천하의 지배질서를 제대로 유지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거시적 관점에서 본다면 중국은 원래 기마민족이었던 우리 민족을 한화정책(漢化政策)으로 몽골 - 만주(滿洲) - 일본 등으로부터 단절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고 볼 수 있지요. 제가 보기엔 그것이 바로 중국이 한반도의 국가들에 실시한 이이제이 정책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국가적 정책이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된 것은 조선시대로, 조선(朝鮮)은 그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로 자처하기도 한 것이죠.

더구나 조선은 오래 전에 사라진 송나라의 성리학(性理學)을 국가적 이데올로기로 삼았는데 이것은 당시 명나라의 입장에서는 더 할 수 없이 반가운 일이었겠죠. 왜냐하면 조선은 스스로 중국에 대하여 사대의 예를 갖추고 중화질서에 편입하려는 적극성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조선이 고려의 북진정책과는 달리 문치주의(文治主義)를 국가적 이데올로기로 표방한 것은 고구려- 고려 이래 강한 전투력을 가졌던 쥬신족의 전통이 단절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고구려는 막강했던 수나라·당나라의 대군을 무력으로 제압하였고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渤海)나 고려도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동북아의 세력균형을 유지합니다.

발해(또는 고려)를 사실상 계승한 후금(後金)은 민족 고유의 수렵방식을 전술적으로 응용하여 중국 전토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조선이 표방한 문치주의는 자체적인 국토방위도 불가능하게 합니다.

조선은 대중화문명(大中華文明)의 방파제 구실을 충실히 수행하였던 것이죠. 그러나 저러나 조선의 건국은 민족사(民族史)의 무대를 한반도에 고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말았습니다.

대쥬신족의 한 갈래인 청(淸)나라는 이전 한족들이 세운 중국의 다른 왕조와는 매우 다른 유목민 정책을 펴고 있어서 한족(漢族)들의 정부와는 매우 큰 대조를 보입니다. 청나라는 유목민들에 대해 이이제이가 아니라 형제의 관념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청나라 조정은 청나라의 지배세력인 쥬신족들이 중국인(한족)들에 동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초기에 청의 중심세력들은 권력을 잃게 되면 언제든지 그들의 고향인 만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것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유조변(柳條邊 : 버드나무 방책)입니다.

청나라 조정은 한족들이 동북지방(東北地方 : 대만주)에 왕래하지 못하도록 1667년 이후부터 산해관ㆍ희봉구 등 9곳에 변문을 설치하고 버드나무를 심어 경계로 삼아 한족의 출입을 금지합니다. 이 버드나무 방책은 산해관을 시작으로 동북으로 흥경(興京 : 씽징)을 지나 압록강 하구에 이르는 약 975km에 이릅니다.

이후 다시 345km의 버드나무 방책이 다시 만들어집니다. 청나라는 유조변을 통하여 쥬신족이 한화되는 것을 막고, 몽고의 유목구역을 확정하여 이들이 요동의 농경지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한편, 비상시 청나라가 중국으로부터 철수할 경우를 대비한 것입니다. 청나라는 한족이 동북 지방에 거주하는 것을 엄금하였습니다.

이 유조변(柳條邊)을 보면 현재의 동북공정(東北工程 : 만주사 전체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국가적 사업)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분명 중화민족의 일원이 아니고 이들 고유의 정치 문화 역사적인 영역이 존재함을 명백히 한 것이니까요.

이러한 청나라의 민족 정책은 이전의 한나라가 시행한 이이제이 정책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여줍니다. 한족이 만든 중국의 왕조들은 하나같이 이이제이 정책으로 유목민들을 분열시키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는데 비하여 청나라는 몽골과는 통혼정책(通婚政策)으로 민족의 동질성(同質性)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청나라는 몽골에 대하여 ‘형제의 나라’로 지칭했으며 사냥대회를 통하여 상호간의 단합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청나라의 뿌리가 한족에 있지 않고 대쥬신(알타이 서쪽의 동북방 유목민)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물론 한족(漢族 : 중국인)이 세운 왕조들이 천하의 안정을 위하여 ‘이이제이’전략을 구사한 것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겠습니다. 중국이 주도하는 동북아의 국제 질서를 전면적으로 부정할 필요도 없지요. 중국이 원하는 것은 다만 중국 민족의 지배하의 평화로운 국제질서의 구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국이 말하는 그 평화는 서로를 인정하는 문화적 상대주의가 있을 경우에만 의미가 있지요. 최근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북공정과 같은 것은 우리 민족사 자체를 말살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중국인들이 중국의 평화를 위해 한 나라의 역사 전체를 희생물로 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것이지요.

여러분들 가운데는 ‘삼국지’ 식의 사고방식으로 너무 지나치게 보는 것은 아닌가 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한반도의 정치적 입장이라는 것은 매우 허약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교조적이고 감상적일 때가 많습니다.

중국과 미국, 또는 일본이 어떤 방식으로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구체적인 자료는 미국 국립 문서보관서가 최초로 공개한 닉슨·마오쩌둥·저우언라이(朱恩來 : 주은래) 비밀 대화록(1972.2)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 비밀대화록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닉슨(당시 미국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양쪽이 동맹국(남한·북한)에 대해 이들이 함부로 전쟁을 하지 않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야만 하고, 북한이나 남한이나 예외 없이 모두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닉슨은 남북한의 충동적이고 전투적인 태도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우호에 금이 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므로 이들을 미국과 중국이 제대로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남북한 문제로 한반도에서 미국이 중국과 서로 싸움을 벌인다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는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할 경우 일본군이 한국에 들어가는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었기 때문에 닉슨의 견해에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나섰다.”

이들의 대화를 보면 한반도는 미국을 비롯하여 중국ㆍ일본의 직접적인 이해가 교차되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이들의 정책에 따라서 한반도의 상황이 결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들의 현실 인식에 있습니다. 우리 주변의 환경을 충분히 돌아보고 그 실체를 보고서 현실과 타협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전체적인 상황을 모르면서 막연히 중국에 대한 짝사랑식의 생각에 젖어 있다면 그것은 때로 자멸의 운명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김운회/동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