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 칼럼] / 프레시안

문재인은 패배하지 않았다

정치공작으로 훼손된 대선

"문재인은 지난 대선에서 패자(敗者)가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확실해져가는 이번 국정원 사태의 핵심적 결론이다. 그는 단지 당선을 탈취 당했던 것이지 대선 패배의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머지는 바로 이 명제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판단 내리면 풀려나가는 작업이다. 국정원의 이른바 "댓글 업무"나 정상회담기록 대선 시기 유출과 이에 대한 유세 활용 등은 모두 "문재인 낙선과 박근혜 당선"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움직인 일련의 정치공작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정원의 정치개입과 부정선거활동, 경찰의 국정원 사건 조작이 문재인 당선을 가로막는 결정적 역할을 했는지는 계량화하기 어렵다. 또 이들의 정치개입이 없었다고 해도 문재인 당선이 이루어졌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따라서 그의 당선이 탈취되었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개표결과와 다른 과도한 말이 될 수 있다. 이 모든 요인이 존재했다고 해서 그가 낙선되었다는 것을 증명을 하는 일은 별도의 일이다.

그러나 초박빙의 상황에서, 이들 권력기관의 부정선거에 의한 지원을 받은 당사자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라는 점은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 되었다. 박근혜는 국정원의 댓글과 자신의 무관함을 강조했지, 국정원의 선거관련 활동 사실에 대해서는 부정하지는 못했다. 조직적인 부정선거에 의한 당선은 당선자 본인의 인지 여부나 의도, 개입에 관계없이 선거법에 의해 그 당선의 법률적 효력이 정지된다. 선거과정에서 밥 한 끼 잘못 사거나 식당에서 발언 하나 아차, 해도 국회의원직이 순식간에 날아가는 것이 오늘날 한국의 선거법이다. 이번 사건은 그런 수준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집권당과 주요 권력기관이 총망라된 조직범죄다.

득표에서 실제로 이겼다고 해도 부정선거 요인이 있는 것이 확인되면, 그것은 승리로 승인되지 못한다. 여기서 승자와 패자는 뒤바뀌게 된다. 반칙에 의한 승리를 민주주의 선거에서 인정해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선거에서 공정경쟁 페어플레이 원칙을 어기는 순간, 후보 자격조차 박탈되게 되어 있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의 선거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진정한 승자의 승리가 다시 확인되는 수순이 기다고 있는 것이다. 반칙한 자는 퇴장당하고 관련자들은 처벌되면 된다. 문재인 당선의 탈취라는 말은 이 승리 확인에 대한 민주주의 제도 작동이 차단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제 그 차단 구조를 혁파해야 한다.

반드시 해봐야 하는 정치적 상상

이번 사태에서 우리는 국정원이 단지 댓글 정도가 아니라 새누리당 재집권전략의 중추를 맡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찰은 국정원의 보조기능을 톡톡히 감당했다. 2012년 12월 16일, 경찰은 느닷없이 밤 11시에 수사발표를 한다. "국정원 선거관련 댓글은 하나도 없다." 당시 후보 박근혜는 기세를 올린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국정원 여직원에 대한 인권유린에 사죄하라." 선거는 12월 19일이었다.

만일 이날 경찰이 같은 시각, 긴급 수사발표를 하면서 국정원의 정치개입 증거를 만천하에 공개했고 그것이 박근혜의 여직원 인권유린 운운 발언에 역풍으로 작용했더라면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박근혜는 사과해야 했고, 국정원은 정치개입 공작의 배후가 누구인지 추궁하는 여론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여당의 기세는 한풀 꺾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국정원의 정치공작과 김무성의 정상회담기록 사전 열람, 그리고 이를 선거에 이용한 그 모든 불법행위 또는 범죄가 선거 직전 뜨거운 쟁점이 되었더라면, 박근혜의 당선이 과연 가능했을까? 아니 만에 하나 당선되었더라도 당선자 본인이 당당하게 처신하면서 대통령의 합법적 권위를 존중해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반칙, 불법, 공작으로 점철된 자신의 당선에 대해 어떻게 정리하고 해명해나갔을까? (이 질문은 지금 더욱 유효해졌다.) 또한 민주당의 대선 평가가 저런 식으로 자해적 방식이 되어 그간의 지리멸렬함과 내부분열을 가져왔을까?

새누리당의 김재원이 김무성에게 문자도 보내고 머리를 조아리며, "형님이 시키시는 일이라면 뭐든지...." 한 장면은 모두를 실소와 놀라움을 가져다주었다. "형님"이 문제가 아니다. 친한 사이의 호칭이기도 하니 그걸 논란할 이유는 없다. 그 다음 문장이 기가 막혔던 것이다. 누구든 조폭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런 집단이 집권세력이다. 이들은 "형님"이 시키면 뭐든지 하는 조직인 것을 만천하에 스스로 폭로했다. 뭔들 못했겠는가? 하는 말마다 모두 거짓임이 드러나고, 궁지에 몰리면 "착각"과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를 앞세운다. 의원직을 건 그토록 확신에 찬 자신의 발언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면 나오는 이들의 대답이 언제나 이런 식이다.


양두구육의 권력


국정원 정치공작은 민주주의 유린과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토대 위에서 박근혜 정권이 등장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인식도 없고, 남북관계 해결의 진정한 관심이 있을 리 없는 권력의 출현이다. 집권 초기 윤창중 사건은 이 집단의 윤리적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내주었다. 자해였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이 집단의 조직적 불법행위에 대한 일상적 습관의 뿌리를 여지없이 폭로해주었다. 이 역시도 자해의 결과였다.

이러는 사이에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총학생회와 교수들의 공동보조는 사태의 심각성을 여과 없이 입증해주고 있다. 게다가 촛불이 다시 붙었다. 문제를 일으킨 자들은 이제 빠져나가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다급한 나머지 민생문제를 내세워 불을 끄려하지만 민생을 저버린 정치공작에 몰두한 당사자는 바로 집권세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력이 버티고 있는 한, 진정한 민생문제 해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집단이 민생을 내세우는 것은, 진열은 양고기를 해놓고 사실은 개고기를 파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이다.

여론조사의 결과도 집권세력에게 당혹감을 준다. 국정원의 정상회담 기록 공개가 잘못되었다는 여론이 우세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에 문제가 없다는 쪽도 우세하다. 새누리당 지지자들조차도 국정원 사태에 관해 새누리당의 조처에 대폭적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일부 보수 언론의 왜곡과 핵심 비틀기가 지면을 도배하고 있지만, 여론은 집권세력의 편에 서 있지 않다. 북은 박근혜-김정일 대화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박근혜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 당사자는 내용을 알고 있는, "까지 않은 카드"가 더 위력적이다. 점점 사면초가가 될 것이다.


다급해진 집권세력

이번 사태는 우리의 지난 정치사 전체의 모순을 압축한 사건의 절정이다. 국가의 권력기관이 민주정치의 본질을 흔들고도 무사했던 시대는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대로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자신의 직속기관에 대한 문제에 침묵하고 있는 박근혜는 이런 식으로는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을 잃어갈 것이다. 금방 드러날 거짓말을 한 자들은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며, 법을 어긴 자들은 재판대에 올라야 할 것이다. 그러기 전까지 이 일은 어느 누구에게도 탈출구가 없을 것이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상황이 어려워지자 갑자기 NLL 공동선언을 여야가 추진하자는 둥 문제의 본질을 흐리기 위한 수를 썼으나 그게 제대로 될 리 없었다. 그러기보다는, 자신들의 재집권 전략의 이름 아래 저지른 부정선거의 조직범죄에 대해 민의의 추궁을 받을 준비를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아니면 계속 무리수를 쓰다가 빼도 박도 못한 일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국정원의 진정한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내부 고발자의 양심선언이라도 나오면, 상황은 더욱 것 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정치에는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렇지 못한 권력은 일체의 정통성과 효력, 그리고 추진력을 갖지 못한다. 바로 그 정의 위에 기초한 정치가 민생이든 뭐든 제대로 정리해나갈 것이다. 이제 민주-진보세력의 연대가 광범위하게 펼쳐질 것이며 지난 시기의 과오와 패배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힘이 결집되어질 것이 예상된다. 한국 민주주의 투쟁사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승만의 독재와 박정희의 철권, 전두환의 총칼을 이겨낸 역사다.


문재인, 나서라


이미 결의를 다지고 있다고 보이는 문재인도 이제 무대의 중앙에 자신 있게 나서야 한다. 중대발언과 결정적 행동의 진원지가 되어야 한다. 본인이 이 모든 사태의 다름 아닌 직접 당사자가 아닌가? 머뭇거릴 이유도, 주저할 시간도 없다. 민주주의의 총체적 위기와 한반도 평화의 난국 앞에서, 사생결단의 투혼을 가지고 도적질 당한 권리를 되찾아 와야 한다.

언필칭 대선 불복 논란도 불사해야 한다. 이제 뒤늦게 불복 논란을 만들어낸 책임은 어디까지나 집권세력에게 있다. 지금 이 사건은 그 어떤 경계선을 미리 그어놓고 다가가야 할 사안이 결코 아니다. 그 진상을 파면 팔수록, 무슨 일들이 국민들을 속이고 민주주의를 짓밟았는지 속속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던 닉슨의 몰락에 2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미국은 국가권력에 대한 의회와 민의의 감시체계를 만들어낸다. 미국시민의 권리를 지켜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 미 상원 처치 위원회(Church Committee) 활동은 미국 민주주의의 신기원을 이루어냈다. 그 보고서는 국가 권력기관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요구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막강한 필독 교과서가 되었다.

의회의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는 조사를 방해하고 혼선을 만들어내는 쪽이 되기 쉬워 보인다. 보수 언론이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을 빼고 교란하고 핵심의제를 공중 분해시키려 들 것이다. 민생국회를 외면하면서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는 식으로 비난할 수 있다.

결국, 이 문제는 직접 민주주의의 현장에서 그 해결의 열쇠가 있다. 표현의 자유, 시위와 집회의 권리는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권이다. 정당하지 못한 권력에 대한 저항권은 존 로크 이래 민주정치의 상식이다. 이 힘이 민주주의를 지켜왔다. 직접 민주주의의 요구와 만나지 못하는 정치는 그 어떤 방식과 구조, 그리고 제도를 취한다고 해도 뿌리가 썩은 고목이 될 뿐이다. 국가 최고 권력의 정당성에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이걸 그대로 묵과하면서 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없고, 민생정치에 진정한 추진력이 생겨날 까닭이 없다. 부당한 방식으로 국가 공권력을 장악한 세력에게 자신의 주권을 대표, 위임하도록 하는 국민 개념은 우리 헌법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난 대선 이후 패배주의로 지쳐있던 세력들이 다시 신발 끈을 매고 있다. 알고 보니 패배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만 당했을 뿐이다. 할 일이 뚜렷해졌다. 중도에 물러날 자리가 없다. 끝까지, 철저하고 끈질기게 밀고 나갈 수 있는 데까지 밀고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국민 무서운 줄 모르는 권력이 서있을 수 있는 자리는 그 어디에도 없다. 국민을 속일 수 있다고 믿는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버림받기를 자초하고 있는 줄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