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신부미사 1.jpg국정원-신부미사 2.jpg국정원-신부미사 3.jpg천주교 시국미사에서 한 발언 원고~~~

23일 밤 천주교 시국미사의 주제는 "국정원 해체, 민주주의 회복"이었습니다. 수백 명의 신부님들, 수녀님들, 그리고 신도분들과 민주시민들이 만들어낸 장엄한 광경이 서울광장에 펼쳐졌습니다. 강론도 좋았고, 성명 내용도 좋았습니다. 성염 전 교황청 대사님의 발언도 너무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저더러 발언을 하라니...이미 시간은 밤10시를 넘어가는데 원고를 준비한대로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간략하게 줄여서 말했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이번 이른바 국정원 '내란음모' 정치공작의 일단을 알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런 기회를 주신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감사드립니다. 아래는 제 발언 원고입니다. 다소 깁니다(이대로 다했다가는 아마도 돌 맞았을 겁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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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이른바 ‘이석기 사태’, 이른바 ‘내란음모 사태’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런데요, 이 이름부터 바꿔야 합니다. 지금의 정국은 국정원이 만들어낸 ‘마녀사냥 정국’입니다.

3주 전이었습니다. 8월 28일,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이 터졌을 때 많이 놀라셨죠?
저도 많이 놀랐습니다. 25년 동안 인권운동하면서 많은 일을 겪은 저도 3주 동안 세 번이나 놀랐습니다.
첫 번째로 놀란 것은 21세기에 내란음모 사건이 들통 났다는 겁니다. 거기다가 현역 국회의원이 주범으로 지목되었으니 더욱 놀랄 일이었습니다. 이게 먹힐까 했는데 국정원이 원하는대로 먹혀 들어갔습니다. 사건의 실체를 밝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절차도 무시하고, 이석기 의원에 대한 채포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서 아직도 공포가 짓누르고 있구나 해서 놀랐습니다.
두 번째로 놀란 것은 녹취록이라는 것이 언론에 보도되고 난 뒤에 통합진보당의 태도에 놀랐습니다. 너무 허둥대고, 말 바꾸기로 불신을 자초했습니다. 저들이 또 진보운동 다 말아먹는구나 화가 났고, 저도 원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요, 저는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조직적으로 내란을 준비한 게 아니구나, 그럴 실력도 없구나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이번 사건은 용두사미로 끝날 공산이 크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세 번째로 놀란 것은 처음에는 당장 큰 일이 일어날 것처럼 난리를 치더니 지난 9월 16일, 이석기 의원이 검찰에 송치되었을 때 국정원이 너무 조용해서 놀랐습니다. 국정원은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면서 이른바 아르오의 결성 시기며, 조직체계며, 강령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왼갖 호들갑을 떨면서 사건을 여론재판으로 키웠던 것에 비하면 소리 소문 없이 송치하고 말았습니다. 연합뉴스는 이런 보도를 냈습니다. 피의자 신문을 하면서 “언론에 보도된 녹취록에 따르면” 하고 묻는다고 합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녹취록이 불법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되다 보니깐 법정에서 증거로도 채택되지 않을 것을 예견하고 이런 식으로 묻는다는 것입니다. 이건 이번 사건이 내란음모와는 너무도 먼 실체가 빈약한 그런 것이란 점을 보여줍니다.

그런데요, 국정원이 이 시점에서 왜 이런 사건을 터뜨렸는가 하는 점입니다. 분명 국정원은 위기에 몰려 있던 때였습니다.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왔고, 천주교만 하더라도 성직자와 수도자들, 그리고 평신도들까지 시국선언을 하였습니다. 이제 국정원은 정기국회에서 수사권을 떼어주든지, 국내 파트를 떼어내던지 하는 개혁의 대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때 들고 나온 게 이번 사건입니다.
국정원은 스스로 개혁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수사권 포기 못합니다. 국내 파트 축소할 수 없습니다. 그걸 이번 사건으로 선언한 것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계속 자신들의 조직을 유지하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사권까지 거머쥔 정보기관으로 남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박정희가 유신 때 중정 정치를 했던 것처럼 국정원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셀프 개혁? 누가 믿습니까? 고양이에게 생선 맡겨 놓은 꼴입니다.
이석기가 밉다고 해서, 경기동부연합이 싫다고 해서, 통합진보당이 원망스럽다고 해서 국정원의 이 마녀사냥 정국을 묵인하시겠습니까? 힘들게 힘들게 국정원을 몰아낼 것 같았는데, 이번 사건 이대로 방치하였다가는 뒷문으로 국정원을 불러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냥 국정원이 아니라 중정으로 변한 국정원입니다. 중정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중정이 있을 때 자유로운 사람 아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여당의원들조차 남산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런 국정원이 오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이제 더욱 멀어질 것입니다.
보십시오. 자본론을 강의하던 강사를 제자가 국정원에 신고하고, 북한 말투를 흉내냈다고 청소년이 신고하고, 사건의 가족 차량에 간첩이라고 써대고 있습니다. 채동욱 검찰총장조차 몰아내려고 난리를 치고 있고, 급기야는 이제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나섰습니다. 친일 교과서를 만들어 역사 공부를 시키겠다고 나서지 않습니까?
공안탄압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국정원이 만들어낸 마녀사냥 정국을 깨지 않으면, 국정원이 주도하는 정치공작을 막아내지 않으면 이제 인권도, 민주주의도 한참 멀어집니다.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국정원이 딱지만 붙이면 종북이 되는 그런 상황을 이대로 두고 보겠습니까? 이대로 놔두었다가는 국정원 해체는커녕 개혁도 물 건너갑니다.

정치위기에 몰렸던 매카시 상원의원은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장에서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면서 반공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5년 동안 미국에서는 난 데 없는 공산주의자 색출파동이 일었습니다. 미국 사회 전체가 황폐화되었습니다.
사상의 자유를 무시하면 이런 결과가 납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 많았던 충격적인 내란음모사건이나 간첩단 사건들이 사실은 고문에 의해서 조작되었음이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이때 우리가 들어야 할 기치는 사상의 자유입니다. 세계인권선언 18조가 밝히고 있듯이, 그리고 우리 헌법이 보장하고 있듯이 증오하는 사상마저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오히려 국가안보가 더욱 튼튼해진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이석기 의원이나 통합진보당의 생각조차도 자유롭게 두려움 없이 공론의 장에서 토론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사법처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공론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을 없애야 합니다.
이제 제 말씀을 마무리해야겠습니다.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그러나 당신의 말할 자유를 억압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편에 서서 목숨 걸고 싸울 것이다.”
말할 자유마저 박탈된 사회는 전체주의 독재국가입니다. 국정원이 설치는 그런 나라, 그런 국정원을 앞세워 공포정치를 하겠다는 박근혜 식의 공안탄압을 묵과하겠습니까?
다시 연대의 손을 잡읍시다. 국정원을 해체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서 반드시 국정원이 만들어낸 마녀사냥 정국을 깨어버립시다. 이번 기회에 국가보안법도 폐지하고, 사상의 자유까지 확보합시다. 그날까지 잡은 손 놓지 말고, 쫄지 말고, 할 말 다 하면서 뚜벅뚜벅 걸어 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