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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위에 미국법

[한겨레] 정은주 기자

등록 : 20110811 20:37

한국선 충돌우려 조례까지 개정했는데

미국은 상·하원 비공식심사 마친 이행법안

“국내법과 충돌땐 효력 없다” 못박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내용이 미국 법률과 충돌하는 경우 법적 효력을 상실하는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이는 한-미 에프티에이가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지니거나 ‘특별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국내법에 우선하는 국내 상황과는 전혀 다른 것이어서 균형을 상실한 불평등한 협정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교통상부가 박주선 의원(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달 7일 미국 상·하원에서 비공식심사를 마친 ‘한-미 자유무역협정 이행법안’엔 “양자(미국 법과 협정)가 저촉·충돌하는 경우 미국 법이 우선하며, 협정의 어느 규정이나 그러한 조항의 적용이 미국 법과 상충할 경우에는 법적 효력이 없다”고 명시돼 있다.

이행법안의 내용은 미국 정부가 다른 나라와 맺은 통상협정이 기존 연방법이나 주법과 충돌하는 경우, 국내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협정의 어떤 규정도 미국 내에서 법적 효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점을 확실하게 못박은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헌법 제6조에 따라 다른 나라와 맺은 조약이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지닌다. 조약이 국내법과 상충될 경우엔 법 적용의 일반 원칙인 ‘신법 우선의 법칙’과 ‘특별법 우선의 원칙’으로 조약이 우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는 조약은 특별법이므로 국내법이 신법이라 하더라도 협정이 더 우선한다는 견해를 줄곧 밝혀왔다.

실제로 정부는 아직 국회 비준동의가 이뤄지지 않아 법적 효력이 없는데도 한-미 에프티에이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며 공공정책에 줄줄이 제동을 걸고 있다. 4대강 공사로 공급 과잉에 이른 굴삭기(굴착기)의 신규 등록을 제한하는 ‘건설기계 수급조절’ 정책을 포기하는 것과 국회가 추진중인 ‘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법’에 난색을 표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한-미 두 나라 간 불균형을 해소하려면 국회가 비준동의할 때 ‘국내법 우선 원칙’이란 조건부 동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동영 의원(민주당)도 “두 나라 간 불평등을 국회가 바로잡도록 대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미국 법이 협정에 우선한다는 조항은 미국-모로코, 미국-호주, 미국-칠레 자유무역협정의 이행법에도 포함돼 있지만 이는 국내적 효력만 있을 뿐 미국의 국제법적 의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협정 위반이 발생하면 우리는 분쟁해결 절차에 따라 미국을 추궁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