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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08 17:10 수정 : 2014.12.08 18:06  한겨레 신문

 

‘봉숭아학당’도 아니고, 지금이 가가대소할 때입니까?
진돗개를 소환하란 건가요? 참으로 딱한 청와대입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 지도부 및 당 소속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오찬에 참석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84

그런 찌라시 얘기에 흔들리는 대한민국이 부끄럽다고요? 이제 대통령은 청와대 감찰 문건 내용에 놀라고 한탄하는 국민들을 부끄러워하고 있군요. 그런 찌라시에 흔들리고 있으니…. 이쯤 되면 이 나라의 궁중드라마도 이제 막장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이 나라 대통령은 왜 제 뒤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덮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가?

지난해 8월이었죠. 당신은 유진룡 장관을 불러놓고, 예의 그 수첩을 뒤적거리다 체육국장과 과장의 이름을 부르며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황당하긴 했지만, 유 장관도 사태의 심각성을 모를 리 있겠습니까. 그러나 뜬금없이 인사 조처가 불러올 파장을 걱정했나 봅니다. 당사자는 물론이고 문화부 공무원들이 동요하고 또 이들에게서 무슨 말이 나올지도 모르고, 결국 이 모든 것은 ‘대통령에게 누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들리는 얘기로는 그래서 유 장관은 그와 친분이 깊은 담당 수석과 상의했다고 합니다. 한두 달 뒤면 정기 인사가 있을 테니 그때 하자고 말입니다. 그래야 눈에 띄지도 않고,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고 대통령에게 돌아올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이고…. 수석도 수긍하길래 그렇게 되는 줄 알았는데, 바로 이틀 뒤 청와대에서 전갈이 왔다고 합니다. ‘두 사람 문제, 대통령이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는 것입니다. 유 장관으로서는 바로 인사 조처를 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다 지나간 일이지만 그때 유 장관의 ‘충성스런’ 판단에 따랐다면, 지금과 같은 사달은 벌어지지도 않고, 나아가 사달을 일으킨 자들의 꼬리도 잡히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찌라시 작자보다 훨씬 지저분한 자로부터 더 지저분한 내용의 이야기를 듣고는 수첩에 적어 두었다가, 그대로 지시하고 또 확인까지 했습니다. 당신은 그 존재를 부인하지만, 지금 국민들이 알고 싶은 건 바로 그렇게 말한 자입니다. 그 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입만 열면 대통령을 보좌하는 민정비서실(공직기강팀)을 ‘찌라시 공작소’로 비하합니다. 한 번도 아니고 입만 열면 그곳에서 생산한 감찰 보고서를 쓰레기로 매도합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이 그렇게 매도한 민정수석실의 보고에 따라 체육국장·과장에 대한 인사조처를 했노라고 둘러댑니다.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지, 대명천지에 이렇게 엉터리 말을 늘어놔도 되는 건가요?

이것 역시 필시 그 음흉한 그림자를 덮기 위한 고육책이라고는 생각되지만, 이 나라 대통령은 진짜인가 아니면 헛것인가 하는 의문을 피하기 힘듭니다. 대통령을 통해 저의 사사로운 이해를 관철하는 자, 그를 위해 온갖 무리를 다 하는 대통령….

당신은 이번에도 ‘~하더라’ 어법을 썼습니다. ‘나쁜 사람이라더라.’ 전에도 그런 어법을 썼죠. 4월16일 오후 5시15분 세월호 범정부대책본부에 들렀을 때도 그랬죠.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어렵습니까?” 입었다는데…. 누가 그런 보고를 했습니까. 그런 말을 누구에게서 들었습니까.

대통령이 창작했을 리는 없습니다. 안보실이나 비서실에서도 그렇게 보고를 했을 리 없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그로 말미암아 대통령이 두고두고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데 그냥 둬서도 안 되고, 두지도 않았을 겁니다. 체육국장·과장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분노를 터뜨리는 대통령이, 어떻게 당신을 평생 부끄럽게 만든 일에 대해 어찌 그냥 두겠습니까. 하지만 당신은 모른 척 넘어갔습니다.

여기에서도 그 숨겨야 하는 존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서실 안보실이 아무리 무능하고 게을러도 오후 5시쯤엔 제대로 된 보고는 했을 겁니다. 300여명이 배 안에 갇혀 있다고요. 그 사실은 이미 오후 2시께 확인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런 비서실의 보고를 누군가 축약해 보고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에게 잘못된 정보가 입력되지 않고는 그렇게 엉뚱한 이야기를 할 리 없습니다. ‘구명조끼 입었다는데~’ 지금 우리가 알고 싶은 것도 그렇게 입력한 자입니다. 이 말은 지금도 당신의 나태와 무능을 고발하는 유령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청와대에 실세가 있다면 진돗개라고? 당신은 ‘찌라시에 흔들리는 대한민국~’ 운운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집권 여당 지도부가 대통령의 이 질 낮은 개그에 배꼽을 잡았다고 하는데, 그때 아마 국민들은 한숨만 쉬고 있었을 겁니다. 지금 그런 농담, 그것도 비극을 우스개로 만드는 농담을 하고 있을 땐가요? 그 말에 이 나라 국정을 책임진 이들이 가가대소할 때인가요? 봉숭아 학당도 아니고….

박근혜 대통령이 7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 지도부 및 당 소속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는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을 두고 실세라는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제도적으로 국정의 모든 사안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습니다. 실세란 그런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왕조시대엔 ‘베갯밑공사’란 말이 있었습니다. 이부자리 속에서 왕의 생각과 마음과 몸을 움직이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때 실력자는 왕의 침실을 쥐고 있는 여인일 것입니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이른바 ‘문고리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의 집무실 문고리를 잡고, 저희와 죽이 맞는 사람만 들여보내거나, 저희들 이해에 반하는 보고서는 걸러서 들이거나 할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리고 대통령이 그런 자를 신뢰한다면, 그는 그야말로 실세이고 실력자가 될 것입니다. 물론 훌륭한 결정권자라면 사리분별이 바르고 곧고 깊어 맑고 밝은 정보와 생각과 판단을 가진 이들을 중용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즐겨 듣고 판단에 참고할 것입니다. 실세 혹은 실력자란 언제 어느 정권에나 있는 법입니다. 어떤 부류가 실세가 되느냐는 결정권자의 성격과 취향과 능력에 따라서 달라질 뿐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청와대에 실세가 없다고 했습니다. 있다면 진돗개뿐이라고 했습니다. 정상적이라면, 청와대의 실력자는 비서실장이어야 합니다. 비서들을 모두 통할해 대통령을 보좌하는데 비서실장이 실세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진돗개만도 못하다고요? 참으로 딱한 풍경이요, 참으로 딱한 청와대입니다.

엊그제도 당신은 민정수석실 감찰 문건 내용을 쓰레기라고 매도하며,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고 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말을 당신은 입만 열면 강조합니다. 공명심도 강한 검찰이 공연히 벌집을 건드릴까 걱정스럽겠지요.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혹시 ‘진돗개나 소환해 조사하라’는 건 아닙니까?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