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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숯불에 구운 철원 닭갈비, 춘천보다 낫네
[철원 도보여행 2] 쉬리공원 산책로를 걷다
11.01.07 08:35 ㅣ최종 업데이트 11.01.07 08:35 유혜준 (hjyu99)
  
쉬리공원 일대 지도. 12월 30일 저녁에 이 부근을 걸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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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 복선 전철이 개통하기 며칠 전, 마지막으로 청량리역에서 춘천행 열차를 타고 춘천에 갔다. 열차가 운행을 하든 전철이 운행을 하든, 춘천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교통편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여행의 느낌은 충분히 달라진다. 그래서 경춘선 열차가 사라지기 전에 열차를 타보고 싶었던 것이다.

 

경춘선 전철이 개통된다는 말에 아는 이가 말했다. 이제, 술은 다 마셨군. 열차 안에서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같이 여행 가는 일행과 술을 마시면서 여행의 흥을 돋울 수 있지만 전철 안에서 술을 마셨다가는 승객들의 따가운 눈초리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거였다.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할 수도 있단다. 오호, 그거 설득력 있는 견해로군, 했다.

 

경춘선 열차를 마지막으로 탄 날, 춘천에서 가장 유명한 음식인 닭갈비를 먹었다.

 

  
춘천닭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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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는 춘천이 유명하지만 춘천에서만 파는 건 아니다. 서울에도 닭갈비를 파는 식당이 동네마다 하나 둘은 있지 않던가. 그런데, 춘천에서 먹는 닭갈비가 더 맛났다. 내가 간 식당이 '원조 닭갈비'로 유명한 집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 여행을 왔다는 기분 탓일 수도 있다. 그래서 생각했다, 역시 닭갈비는 춘천에서 먹는 게 제 맛이야. 한데 철원에서 먹은 닭갈비도 만만치 않았다.

 

구제역 때문에... 취소된 얼음마당 축제

 

명성산 입구를 지나 눈 덮인 도로를 한참을 걷다가 다시 지포리로 돌아갔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김화읍에 있는 쉬리공원으로 가서 산책로를 걸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지포리 버스정류장에 철원 군내를 도는 시내버스를 타고 김화읍으로 갔다.

 

벌써 하늘은 해가 지려고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확실히 겨울 해는 짧다. 다섯 시를 조금 넘겼을 뿐인데 땅거미가 지고 있으니 말이다. 매해 겨울마다 '얼음마당 축제'가 열린다는 화강 부근은 아이들 두엇이 썰매를 타고 있을 뿐 적막했다. 구제역 때문에 축제가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얼음마당 축제는 이 동네 사람들만 참석하는 소박한 마을 축제, 라는 게 시골쥐의 설명이다.

 

  
눈덮인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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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강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 길, 눈으로 덮여 있었다. 한 10여 센티미터쯤 되려나, 높이가. 날씨가 추워도 산책을 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는지 눈길은 사람들 발자국으로 어지럽다. 겨울의 철원은 어딜 가나 눈길인가 보다.

 

장수길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는 산책로를 따라 한 시간 남짓 걸었더니 어둠이 강물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깊어간다. 화강의 강폭은 넓지 않았다. 이 강, 지도를 보면 한탄강에서 갈라져 나온 강줄기인 것을 알 수 있다.

 

강가를 따라 가로등이 늘어서 있는데, 빛깔이 변한다. 보랏빛에서 파란빛으로, 그리고 초록빛에서 붉은빛으로 규칙적으로 바뀌는 가로등이 어둠 속에서 도드라져 보인다. 날씨가 추운 탓일까? 그 빛은 멀리 퍼지지 않고 제 주변만 밝히는 것 같다. 그래도 보기는 좋다. 

 

물 흐르는 소리가 어둠을 뚫고 들려오고, 학포교를 달리는 자동차가 내는 소음이 긴 여운을 남긴다.

 

  
철원 화강. 어둠이 조금씩 강물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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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는 징검다리 모양의 콘크리트 길이 놓여 있었다. 그 길은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는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우리는 그 길을 걸어 강을 건너면서 발자국을 남겼다. 사각형의 콘크리트 더미와 더미 사이에 강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흐르는 물을 내려다보려니 왈칵 겁이 난다. 자꾸만 그 물 속으로 발을 내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어지럼증과 함께 울렁증이 생기는 것도 같다. 내가 왜 이러지, 싶어서 마음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딛었다. 다행히 강물은 제 갈길을 가고 나를, 내 발을 잡아 끌지 않았다.

 

와수리에 있는 식당에 도착한 건 오후 6시가 훌쩍 넘어서였다. 어둠은 늪처럼 빛을 빨아들여 주변은 더 캄캄해지고 있었다. 12시가 넘은 뒤부터 걸었으니 그리 많이 걸은 건 아니지만, 걸음을 옮기기 쉽지 않은 눈길을 걸은 탓인지 종아리가, 허벅지가 묵지근하면서 피로가 느껴졌다.

 

춘천과는 격이 다른 철원 닭갈비

 

  
철원 학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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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안은 한산했다. 군복을 입은 젊은이 두엇이 고기를 구우면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그 안쪽으로는 손님들이 두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스무 명 남짓 앉을 수 있게 미리 상을 봐둔 자리가 있었다. 송년회 모임을 예약한 자리란다.

 

그 부근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 식당, 시골쥐의 단골이라고 했다. 메뉴는 닭갈비. 철원까지 와서 닭갈비라니, 철원도 춘천처럼 닭갈비가 유명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춘천 닭갈비와는 다른 거야."

 

시골쥐가 말했다. 닭갈비가 닭갈비지 다를 게 무에 있겠어? 그렇게 생각했다.

 

먼저 숯불이 날라져 왔다. 이 식당에서 사용하는 숯은 참숯이란다. 시중 음식점에서 사용하는 숯과 다르단다. 검은 숯에 붉은 불꽃이 신나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 위에 불판이 올려지고, 벌건 양념으로 버무려진 닭갈비가 불판 위에 넓고 길게 펼쳐진다.

 

춘천닭갈비는 둥글고 두꺼운 철판 위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닭 살코기에 여러 가지 야채를 넣고 볶는 것인데 비해 이 집의 닭갈비는 매운 양념에 재운 닭고기를 숯불에 굽는 것이었다. 고기가 익으면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고기를 뒤집으며 굽던 시골쥐가 잘 익은 닭고기를 한 입 크기로 잘라 내밀었다.

 

  
철원닭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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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서 이런저런 간식을 잔뜩 먹었던 터라 그다지 시장하지 않았는데, 매콤하면서도 연한 육질이 입맛을 자극한다. 어어, 이거 기대 이상인 걸. 숯불에 구운 고기가 더 맛있는 거야 다 아는 사실이지만, 닭고기도 직접 숯불에 구우니 그 맛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생각을 수정했다. 춘천닭갈비도 맛있지만 숯불에 구워먹는 철원닭갈비도 맛있다고.

 

덕분에 무리했다. 여자 셋이서 닭갈비 5인분을 먹어 치웠다. 이 닭갈비를 비빔냉면에 싸서 먹으니 맛이 또 색다르다. 이 집, 얼음이 사각거리는 열무물김치도 맛이 괜찮다. 그 열무김치에 냉면 말아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으나, 배가 불러서 도저히 못 먹겠더라는 얘기. 내가 어지간하면 과식을 안 하는데, 이 날은 심하게 무리했다. 식당 문을 걸어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굴러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정도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닭갈비에 맥주를 곁들였는데, 기왕이면 철원 오대쌀로 만들었다는 궁예주나 초가우리 쌀막걸리를 마실 걸 그랬다는 거. 다음에 철원에 가면 꼭 찾아서 마셔봐야겠다. 그 지역 특산술을 먹어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인데,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쉬리공원의 얼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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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뼈 여관이라고 들어는 봤수?
 

철원은 확실히 추운 지역이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깊어지자 기온이 뚝 떨어지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볼에 와 닿는 찬바람 속에 얼음송곳이 숨어 볼을 콕콕 찌르는 것 같다. 그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와수리 중심가를 걸어 숙소로 향했다.

 

우리가 묵을 예정인 숙소는 '하얀뼈(백골) 회관'. 군인 휴양소라고 했다. 욕실이 딸린 방이었는데, 숙소 내부는 오래전에 지은 듯 허름했지만, 방은 무지 따뜻했다. 방바닥에 요가 깔려 있었는데, 요 밑으로 손을 넣어보니 방바닥이 짤짤 끓는다. 뜨거운 물도 펑펑 나오고. 덕분에 철원의 매서운 추위를 전혀 느끼지 않고 단잠을 잘 수 있었다.

 

여행 숙박지의 최고 조건은 따뜻한 방에 뜨거운 물 그리고 안전인데, 이 조건이 아주 딱 들어맞는 숙소였다. 왜 안 그러겠나. 숙소를 지키는 사람이 군인들이니 말이다. 평일이라 묵는 손님들이 거의 없어 한산하지만, 주말 특히 토요일 밤에는 손님들이 많아 미리 예약을 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