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원 김용수, 시사방송 진행자 `망치부인` 이경선 부부 사는법
     --  오세훈 시장 호통친 초선의원이 내 남편

제가 지방선거 끝나고 (방송에서) 그랬다. '아마 오세훈 시장은 재선된 것을 철저히 후회하게 될 거다. 오 시장은 내 신랑을 통해서 철저히 밟아주겠다'고. 시청자들이 '설마?' 그러더라. 그래서 제가 '걱정하지 마라. 내가 (신랑을) 충분히 키워 놨다. 기대하시라'고 방송에서 대놓고 그랬다."

 

'망치부인'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그의 자택 거실 가득 울려 퍼졌다. 이곳은 '아프리카 TV'에서 시사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망치부인의 '스튜디오'다. 책상 위에 나란히 놓인 두 대의 컴퓨터에서는 지난달 25일 있었던 서울시의회 시정질문 영상이(동영상 보기 클릭!) 재방송되고 있었다. 모니터 속, 한 시의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오세훈 시장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날 포털사이트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초선 시의원에게 K.O패'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그 초선 시의원이 바로 망치부인의 남편 김용석 시의원(민주당, 도봉구4)이다.

 

  
아프리카 TV 시사토론 진행자 '망치부인' 이경선씨와 김용석 서울시의원 부부.
ⓒ 권우성
김용석

 

망치부인과 김 의원의 '부창부수'... 기자도 '쫄았다'

 

지난달 30일, '망치부인' 이경선(42)·'초선시의원' 김용석(41) 부부를 만나러 가는 길. 솔직히 조금 '쫄았다'. "국회의원까지 하신 분이 질문과 질의의 차이도 모르냐"며 오 시장을 거칠게 몰아붙이던 김 의원은 그나마 낫다. '불량주부 망치부인의 생방송 시사수다'에서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정치·사회 등 시사 현안에 대해 거침없는 표현들을 마구 쏟아내는 망치부인, 간간이 욕설도 터져 나오고, 흥분할 때면 모니터를 향해 삿대질도 마다하지 않는 그 망치부인이 걱정이었다.

 

그는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망치가 주인공에게 자유를 가져다주듯이, 나도 그런 망치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며 스스로 망치부인이라는 닉네임을 지었다. 하지만 망치부인의 방송을 잠깐 보기만 해도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두드리는 망치가 생각난다. 망치부인의 시사방송은 지난 3년간 500만 명이 넘는 시청자가 봤을 정도로 '아프리카 TV'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의 방송을 시청하는 팬들은 "통쾌하다"며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망치부인의 방송을 먼저 듣고 김용석 의원의 시정질문 영상을 본 한 블로거가 "역시 부창부수"라는 평을 내놓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김 의원이나 망치부인이나, 부부가 둘 다 이렇게 센 스타일이면 이번 인터뷰, 쉽지 않겠구나'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직접 만난 두 부부의 모습은 예상대로였고, 때론 예상을 비켜갔다. 망치부인이 '거침없는 입담'을 과시하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동안, 남편 김용석 시의원은 망치부인 옆에 조용히 앉아 부인의 이야기에 적절히 추임새를 넣었다. 딸 셋 집안에서 아들처럼 자란 망치부인이 거실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밤을 새워 방송을 하는 동안, 아들 다섯 집안에서 딸처럼 자랐다는 김 의원은 주방을 지키며 살림도 하고 공부도 한단다. 이날도 김 의원은 정성스럽게 깎은 키위를 상 위에 올려놓았다. 인터뷰는 망치부인 방송의 배경이기도 한 거실 책장 앞에서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남편이 오세훈 시장에게 퍼붓는 것 보고 시청자들 대리만족"

 

  
지난달 25일 오세훈 시장을 상대로 시정질문하는 김용석 의원.
ⓒ 권우성
오세훈

- 8월 25일 오세훈 서울시장을 상대로 한 김용석 시의원의 시정질문이 화제가 됐는데.

망치부인 "난리도 아니었다. 우리 방송 시청자들이 너무나 통쾌해했다. '초선의원에게 K.O패'. 너무나 충격적인 거다. 오세훈 (시장의) 별명이 황태자 아닌가. 차기 대선후보이고, 국회의원 출신으로 그 많은 인기에, 그 폭풍 속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 오세훈이다. 넘기 어려운 벽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가 (남편에게) 그랬다. '그 사람은 변호사 출신이다. 대답할 기회를 많이 주지 마라'. 하하."

 

- 그렇지만 오 시장에게 답변 기회를 너무 안 준 것 아닌가?

망치부인 "우리 시청자들이 전부 그동안 너무 설움을 받았다. 이명박 (대통령) 때문에 너무 서럽고 한스럽고 당하고만 살았는데, (남편이) 오 시장한테 퍼붓는 걸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부장한테 욕먹을 때, 기분 나쁠 때 (시정질문 영상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더라.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1988년 청문회 때 얘기를 많이 하더라. (남편이) 경남 출신이라 어투가 비슷한 효과를 낸 것 같다. 속이 시원하다. 자랑스럽다."

김용석 시의원(이하 김 의원) "사실 제가 연구를 많이 했다. 지난 7대 서울시의원들 시정질문한 내용들을 모니터링을 하면서 '아, 그래. 답변할 기회를 많이 안 주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쭉 밀고 나가되, 중간중간에 지루하지 않게 답변을 이끌어내고 반대 논리를 펴야겠다' 하고 미리 작전을 짜서 갔다."

 

- 이번 시정질문에서 오세훈 시장의 답변 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김 의원 "공부를 많이 해온 것 같지 않다. 시정질문을 하면 그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나 대안, 그 의원이 고민한 지점에 근접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등이 보여야 하는데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더라."

망치부인 "오세훈 시장이 지난번 한나라당 일색이었던 (7대) 시의회 의원들한테 '공부 좀 해 와라'고 말했던 사람 아닌가. 그때와 비교하면 굉장히 자세가 달라졌다. 헤어스타일부터 완전히 바뀌었다. '강남시장', '오만함' 등에 대한 비난이 있었는데, 지금 (오 시장이) 보여주는 모습은 굉장히 서민적이고, 촌스럽고, 외모적 강점을 최대한 줄였다는 생각이 든다. 태도도 지난번에는 굉장히 교만하고 오만방자했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 신랑 앞에 서 있는 오세훈은 굉장히 자신을 낮추고 겸손한 모습이었다."

 

- 망치부인은 지금까지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관심이 높았는데, 이제는 오 시장한테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인가?

망치부인 "솔직히 저는 오세훈 시장한테 관심 없다. 하하. 선거 딱 끝난 다음 한명숙 전 총리 떨어졌다고 다들 코가 빠져 있기에 제가 (방송에서) 그랬다. '서울시의회와 경기도의회를 우리가 잡았기 때문에 지난 8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낱낱이 까발리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그래야 과거 정부가 얼마나 무능했고 부패했는지를 드러낼 수 있다. 철저히 밟아줄 테니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그런 뒤에, 제가 방송에서 저 영상(김 의원의 시정질문 영상)을 틀어주니까, 우리 시청자들이 막 '(오 시장은) 괜히 시장 됐어, 괜히 시장 됐어 하면서 지금 후회하고 있을 거야. 아우 시원해, 아우 고소해'라고 하더라. (웃음)."

 

'전대협 모범연애 사례'로 <말>지에 보도... 6년 연애 끝에 결혼

 

  
김용석 서울시의원과 아프리카 TV 시사토론 진행자 '망치부인' 이경선씨 부부.
ⓒ 권우성
김용석

 

- 어떻게 만났나. 경희대 사학과 캠퍼스 커플(CC)이었나?

망치부인 "89학번 과 동기였다. 신랑은 아들 다섯 집안에서 딸처럼 자랐고, 저는 딸 셋 집안에서 아들처럼 자라서 우리 엄마는 제가 손에 물 묻히는 걸 싫어했다. (남편을 가리키며) 이쪽은 아들만 다섯인데 유일하게 집안일을 돌보는 아들이었던 거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밥하고."

김 의원 "심부름도 많이 하고(웃음)."

망치부인 "시아버님이 아들 다섯을 참 교양을 중시해서 키웠다. 그런데 우리 집은 반대로 아버지가 저한테 '뭘 하지 마'라는 말을 안 했다.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결혼도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 이런 집에서 자란 거다. 그러니까 (남편이) 날보고 욕을 하는 거지. '뭐 저런 여자가 다 있나.' 술고래에 목소리 커, 욕 잘해, 화 많이 내, 뻑하면 싸워……. 날 너무너무 싫어했다."

김 의원 "(당시) 촌놈이었다, 제가."

망치부인 "(남편은) 경상남도 사천의 교양 있는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날 처음에 딱 봤을 때 충격 그 자체였던 거다. 그래서 1학년 때는 날 너무너무 싫어하다가, 1학년 가을에 우연히 저한테 논쟁을 건 거다. 그런데 제가 또 말싸움에 지는 사람이 아니다. 전 (논쟁을 할 때) 저의 모든 문제를 다 오픈한다. 남들은 숨기고 싶은 문제를……. "

김 의원 "그때 여성의 흡연 문제를 가지고 논쟁이 붙었다. 그 논쟁 과정에 (부인이) 자신의 치부나 집안의 안 좋은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공개한 것에 충격을 먹고, 겉만 보고 사람을 평가했던 것에 대해 반성을 했다. 사람을 겉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고민은 내면적으로 다 따로 있구나' 하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망치부인 "제가 워낙 유명했기 때문에 총학생회 선배들, 다른 학교 선배들이 밥 사준다고 줄서 있었다. 점심을 두 번 먹고 다닐 때였어, 내가(웃음). 그런데 어디서 이름도 없는 애가, 한겨울에 봄 점퍼 입는 애가 나한테 들이대니 얼마나 웃겼겠어, 내가. 그런데 담배 논쟁이 붙은 다음부터는 술만 먹으면 (남편이) '난 네가 좋은데 어떻게 하냐' 그러다가 대학교 2학년 봄부터 사귀게 됐다."

 

- 결혼은 언제 했나?

망치부인 "1990년 3월 14일부터 사귀어서 1996년 2월에 결혼했다. 1992년인가 1993년에 <말>지에서 취재 왔다. 전대협 모범연애 사례라고. 저는 사실 그때 (남편과) 헤어지려고 했는데, '내가 만약에 널 버리면 전대협한테 돌 맞겠다' 그러면서 계속 만났다. 중요한 건, 1학년 11월에, 술만 먹으면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할 즈음, 신랑이 겨울에 공장 활동을 갔는데, 그 공장 활동을 가서 얼마나 힘들었겠어, 그런데 (공장 활동) 가서 이십 몇 만원 벌어왔다고 선물을 하겠다는 거다. 그러더니, 길을 지나가다가 리어카에서 파는 500원짜리 반지를 사서, (두 번째 손가락을 가리키며) 이 손가락에다가 반지를 끼워 주면서 '이 여자는 내 여자다!' 하더라.(웃음)"

김 의원 "(멋쩍어하며) 반지를 끼워주니까, 책임을 져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망치부인 "아니 무슨, 500원짜리 반지로. 다이아 반지도 아니고."

 

최연소 구의회 의장... 신랑이 구의원이라는 이야기를 8년 동안 못한 이유

 

  
아프리카 TV 시사토론 진행자 '망치부인' 이경선씨.
ⓒ 권우성
망치부인

- 망치부인은 학원 강사도 했다고? 

망치부인 "학원 강사 10년, 영업사원 2년, 정치연구소 4년! 신랑이 김근태 전 의원 밑에서 무급봉사로 시작해서 1년인가 월급 받고 일하다, 그 다음에 구의원이 됐다. 구의원 시절에는 한 달에 55만 원 정도 받았다."

김 의원 "35만원은 월급으로 받고, 회의 한 번 참가하면 5만원씩 받았다."

망치부인 "제가 돈을 벌 수밖에 없었다."

김 의원 "이 사람이 고생 많이 했다."

망치부인 "그런데 우리 신랑이 뭐라고 그랬냐면, '가사노동이 얼만 줄 아냐, 환산하면 200만원이다', 그래서 아무 말 못하고 돈 벌어왔다, 제가."

김 의원 "영민이(딸) 초등학교 학부모 총회를 하는데 아빠가 오는 사람은 35명 중에 한 2명. 그중 하나가 저였다."

 

- 김근태 전 의원과는 어떻게 일하게 됐나?

김 의원 "(1996년 2월) 신혼여행을 갔다 왔는데, 그때 김근태 전 의원이 도봉구에 출마했고, 아는 선배가 김 전 의원 캠프에 있었다. 그래서 한두 달 무급으로 자원봉사를 했고, 선거 끝나니까 김근태 의원이 '지역에서 일을 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2년 정도 지역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당시 이 동네 주민들은 한나라당 지지 성향이 강했다. 1998년 선거 때 (민주당) 후보가 없었다. 선거 한 달 앞두고 갑자기 사무실에 있는 저를 (구의원 선거에) 내보냈다."

망치부인 "그때 김 전 의원이 남편에게 세 번이나 구의원 출마를 하라고 그랬다는 거다. 두 번은 자기가 자체 거절을 하고, 세 번째 제안을 받고는 나한테 물었다. '김근태 의원이 자꾸 구의원 나가라고 하는데, 선거는 한 달 남았는데 돈은 없고, 구의원 당선된다는 보장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그래서 제가 그랬다. '까라면 까는 거지, 대장이 나가라고 하면 떨어지더라도 나가는 거지, 내가 도와줄게!'"

김 의원 "결단력이 있어요, 이 사람이."

망치부인 "신랑이 구의원이라는 이야기를 8년 동안 못했다. '남편 뭐하냐'고 하기에 4년은 '공부해요' 그러고. 두 번째 구의원 됐을 때는 신랑이 의장이 됐다. 그때는 '좀 특이한 일을 한다' 그러고. 세 번째 당선됐을 때부터 월급이 나오니까, 사람들한테 '(우리 남편) 구의원 한다'고 말했다."

 

- 두 번째 구의원에 당선됐을 때, 구의회 의장이 된 건가?

김 의원 "그렇다. 그때가 만 31세였다."

망치부인 "전국 최연소 3선 구의원, 전국 최연소 구의회 의장, 지방의회 우수의정활동 대상! 선거 때 쫙~ 읊었던 거다(웃음)."

 

- 시의원에는 왜 출마했나?

김 의원 "구의원 세 번 하니까, 물은 고이면 썩는다고, 더 넓은 세계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책을 내면 낼 수도 있는데, 안 낸 이유가 있다. 기초의회 12년 활동한 것 가지고는 책을 낼 수 없을 것 같더라. 광역의원을 한 번 해보고 어느 정도 보강된 내용을 가지고 지방의원들 상대로 책을 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나, 100만 '안티MB'·5만 '노노데모'·10만 '타진요'랑 싸운 여자야"

 

  
8월 30일 밤 서울 도봉구 창동 자택 거실에서 '아프리카TV' 생방송을 준비하는 '망치부인' 이경선씨.
ⓒ 권우성
망치부인

- 망치부인은 방송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망치부인 "2007년 1월 처음에는 김근태 전 의원 대선 출마 홍보방송으로 시작했다. 처음에 게임방송 위주였던 아프리카TV에서 시사이야기를 한다는 게 정말 힘들었고, 욕도 많이 먹고, 인기도 없었다. 하루에 70명? 그런데 2007년 6월 김근태 전 의원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방송 장비를) 9개월 할부로 구입해서 4번인가 5번을 냈는데, 갑자기 불출마 선언을 한 거다. 아니, 할부라도 끝난 다음에 할 일이지…….

 

그랬다가 2007년 12월에 태안 앞바다 사고가 났는데, 어떤 방송에서도 삼성중공업 이야기를 안 하더라. 내가 뉴스를 찾아보니까, 소위 진보언론에서는 삼성중공업 이야기가 딱 나와 있었다. 그런데 MBC·KBS·SBS는 매일 자원봉사 얘기만 방송했다. '내가 (방송으로) 돌아가야 되겠다. 아무도 안 보고 한두 명이 볼지라도 언론이 알려주지 않는, 언론이 숨기고 있는 내용을 나는 밝혀야겠다.' 그래서 다시 아프리카TV로 돌아오게 됐다. 공중파 언론에 나오지 않는 진실, 저는 소위 카르텔이라고 보는데, 언론 카르텔이 유도하고 있는 여론, 그 여론이 숨기고 있는 것들, 잘못된 여론몰이에 대해서 늘 지적하고, 문제제기하고……. 그게 제가 방송을 하는 목표다."

 

- 팬도 많지만 안티도 많다고 들었다.

  
아프리카TV '불량주부 망치부인의 생방송 시사수다'.
ⓒ 아프리카TV 망치부인
망치부인

망치부인 "2008년에는 (진보성향의) 100만 '안티MB'하고 싸웠고, 그 다음에는 (보수성향의) 5만 '노노데모'하고 싸웠고, 얼마 전에는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 10만하고 싸웠다. 그런데 중요한 건 한 번도 안 졌다는 거다. '안티MB'의 경우, 2008년에 이명박을 탄핵해야 한다는 거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 '너희 바보 아니냐, 아무리 무식해도 그렇지, 탄핵은 국회의원이 시키는 건데 니들 손으로 국회의원 3분의 1을 뽑아놓고 무슨 탄핵이냐, 하야운동이라면 내가 도와주마, 그런데 탄핵이라면 니들은 병신이다, 병! 신!' 이러니까 100만 명의 '안티MB'가 아주 그냥 와구구구(웃음).

 

사실 타블로 문제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8.8 개각 발표가 났는데, 타블로 뉴스가 네이트 (인기뉴스) 3위 안에 딱 있는 거야. '아니, 이것들이!' 그래서 내가 타블로 연구를 딱 시작한 거다. 그래서 타진요한테 '나머지 문제는 나중에 하고 학력부터 붙자, 너네, 타블로가 스탠포드 안 나왔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대라, 그러면 내가 방송 접으마! 대신에 타블로가 스탠포드를 졸업했다는 게 확인되면 별풍선 만 개를 쏴라!' 백만 원 어치를 쏘라는 거였다. 애들이 딱 '쪼는' 거지. 지들이 만 개를 어떻게 쏴. 당시에는 8.8 개각 문제가 가장 중요한데, 타블로 문제 등으로 (여론의) 논점이 새는 걸 막는 게 제 목표였다."

 

- 안티가 많으면 방송하는 데 힘들지 않나?

망치부인 "지난번에 무슨 보안사 출신이라는 사람이 신랑한테 와서 그러는 거야. '앞으로 대통령까지 밀고 갈 건데, 다만 부인이 좌빨짓만 안 하면!'(웃음) 그래서 제가 (남편한테) 그랬다. '(그 사람) 명함 들고 와, 발라버려(웃음)' 저는 안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안티가 있어야 항상 긴장한다. 그 사람들한테 책잡히지 않으려면 나의 논리를 더 완성해야 하고 함부로 방송할 수 없다. 

 

그리고 나중에는 안티들이 다 내 편으로 온다. (영화배우) 문성근씨가 이야기하는 '100만 민란', 그 이야기도 내가 방송에서 했던 (맥락의) 이야기다. 내가 했던 이야기를 사람들이 듣고 어디에 가서 글도 쓰고 이야기도 하고 결국 여론이 돼서 돌아온 거다. 저는 제 방송에 자부심도 갖고 있고 역할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안티는 나의 앞길에 전혀 방해가 안 된다."

 

"중앙정치 욕심 없어... 우리 딸이 더 좋은 지방자치 아래에서 살게 됐으면"

 

- 방송에서 서울시 시정 이야기도 하나?

망치부인 "서울시 이야기는 많이 안 한다. 왜냐하면, 너무 남편 자랑한다고 그럴까봐. 또 이 방송의 의도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서울시 이야기 이제까지 한 번도 안 했다. 그런데 이번 (시정질문) 영상은 많은 사람이 보면 볼수록 희망이 된다. 지금처럼 국민들이 위축되어 있을 때. 그리고 그때가 왜 청문회 제대로 못한 날 아니었나. 어떻게 해서든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 신랑 영상을 보여줬다. 사실 평상시에는 자랑할 것도 없고(웃음)."

 

  
김용석 서울시의원
ⓒ 권우성
김용석

- 김 의원은 망치부인 방송을 보나?

김 의원 "잘 안 본다. (부인이 방송할 때) 저는 주방에서 공부한다. 할 일이 많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딸내미 영민이까지 재워놓고, 새벽 2시까지 공부한다."

망치부인 "구의원 임기 후반에 강연 많이 다녔는데, 시의원 되면서 공부를 진짜 많이 한다."

김 의원 "내일도 경남 창원으로 간다."

 

- 어떤 내용을 강연하나?

김 의원 "(강의 자료를 보여주며) 구의회 활동은 어떻게 하는지, 예산서는 어떻게 보는지 등 주로 실례를 많이 들어준다. 우리 지방자치 역사가 20년, 일본이 120년, 미국이 200년이 넘기 때문에 사실 역사로 보면 짧고 보잘것없다. 그걸 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경험을 나누는 거다. 왜냐하면 제가 초선 때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고 책도 없었고 인터넷도 그때는 안 됐다. 그 답답한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또 강연하면서 저도 많이 배운다."

 

망치부인 "(책상 위 책자를 가리키며) 저렇게 해마다 두꺼운 예산서들이 나오지만, 구의원들 누구도 읽어보지 않는다. 그런데 (남편은) 예산서 사이사이에 견출지 수백 장씩 붙여놓고 단어 하나씩 찾아가면서 읽는다. 그래서 이 예산서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예산서 속에 들어 있는 함정은 무엇인지 등을 찾아내는 거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정말 이런 의원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게 다 누구 돈이냐? 우리 돈인데! 이걸 거둬서 이놈들이 어떻게 쓰고 있는지, 구민들이 감시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면 결국 근본부터 흔들린다. 그래서 나는 이런 활동들이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파되어야 하고. 모든 동네 기초의회부터 튼튼해지고, 국회의원들이 밑에서 치고 들어오는 새로운 정치인들에게 눌려서, 제대로 정치하게 해야 한다. 지금 중앙정치인들은 너무나 무능하다."

 

- 김 의원은 향후 중앙정치에 진출할 계획인가?

김 의원 "솔직히 (그럴 계획이) 전혀 없다.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계속 갖고 있지만 중앙정치해도 별 재미도 없을 것 같고, 능력도 안 되고."

망치부인 "안철수씨가 그러지 않았나. '연구내용을 서로 나눠야 한다'고. '그래야 똑같은 오류를 밟지 않고 사회가 발전한다'고. 그러니까 (남편은) 지방의회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되겠다는 거다. 그 내용을 하나의 성과물로 해서, 대한민국에서 지방자치의 전형을 만들어놓으면 다음 사람들이 그걸 교과서로 보고 출발할 것 아닌가. 그럼 더 나은 세상, 우리 딸이 더 좋은 지방자치 하에 살게 될 거다. 그게 우리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