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con용산에 가보셨어요?"

 

나는 가끔 갔다. 갈 때마다 용산은 좀 이상해 보였다. 용산 역은 으리으리한데 길 하나 건너면 낡은 건물들 투성이니까.

 

이 알 수 없는 곳에서 지난 겨울엔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그리고 지금까지, '신용산역' 버스 정류장 건너편, 덕지덕지 붙은 현수막조차 채 가릴 수 없는 상흔을 입은 남일당 건물 앞에서는 매일 저녁 추모 미사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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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열사 추모를 위한 생명평화미사.
ⓒ 조은별
용산참사

 

"하루빨리 이 분들의 억울한 죽음이 그 누명이 벗겨지기를, 유족들의 한이 풀리는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거꾸로 가는 이 나라의 역행이 멈춰지길 우리 하느님께 마음 모아 기도 드리며 이 미사를 올립니다."

 

용산 참사가 일어나고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천막 기도를 시작한 지도 3일이면 50일째가 된다. 최근 이 천막의 개축 공사가 있었다. 바닥을 새로 했고, 지붕을 다시 받쳤다. 누군가가 익살스럽게 붙여 놓은 노란 '별 다섯 개'가 눈에 띈다. 이쯤 되면 '신부님들이 '천막 호텔'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는 보수 언론의 공격이 들어올 법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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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단장을 한 천막에 누군가 붙여 놓은 별 다섯 개.
ⓒ 최재혁
용산참사

 

"오늘 복음에선 잘 아는 것이 독이라고, 정말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을 담지 못하는 것, 그게 독이 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이명박 정권은 우리 유가족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너무 잘 알아서 건드리지도 대화하지도 만나지도 않고 협상도 안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김종성 신부, 7월 31일 미사의 강론 중에서)

 

무시하는 것만이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임을 잘 아는 걸까. 성당도 아닌 골목길에서 날마다 미사를 올린다니 관심을 가질 법도 한데 언론과 정부는 참 조용하다. 하지만 시간과 정성이 축적된 이 생명평화미사 릴레이는 갈수록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드러내고 있다.

 

용산 참사 직후 경찰은 분향소 앞을 차 벽으로 가로막고 있었다. 지금은 버스 한 대가 남일당 건물 옆구리에 서 있고, 다른 버스는 주변부로 밀려났다. 철거민들은 경찰에게 '무사히 근무하는 법'을 알려주는 현수막까지 내 걸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끈질긴 저항이 있었다. 유가족은 경찰의 불법행위에 언제나 단호하게 항의한다. 분쟁이 생기면 차분히 경찰의 잘못을 지적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신부님들의 역할도 크다. 욕을 하고 도망가려는 경찰을 붙잡고 "난 용산 시민인데 너는 누구냐, 신분증 내놔라"하고 따지는 시민들도 한 몫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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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무사히 근무하는 법
ⓒ 최재혁
용산참사

 

구청이 간이 화장실을 다시 철거해 가려고 해서 철거민들이 '청소를 하겠다'며 냄새 나는 화장실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버텼던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노한나 전철연 총무는 "처음엔 경찰이 우리를 사람 취급도 안 했다"고 기억한다.

 

철거민들은 요즘 미사가 끝난 뒤 참가자들에게 가끔 돌리는 음식을 의경들에게도 슬쩍 찔러준다. "(지휘관이) 우리를 어딘가에서 다 보고 있다"며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의경들은 처음에는 줘도 안 받는 척 하지만 떠나기 전에 다 챙겨 간다는 후문. 버스 뒤에서 지켜서 있던 의경들 중 한 명은 추모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저도 모르게 성호를 긋다가 어색하게 팔을 떨구기도 했다.

 

경찰은 때로는 자세를 낮춰 "우리도 퇴근하게 좀 해주세요"라고 애걸하기도 한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이 경찰들도 내심은 용산 참사의 조속한 해결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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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당 건물 옆에 서 있는 경찰 버스.
ⓒ 조은별
용산참사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정말로 190일이 됐네요. 그런데 저희 유가족들은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저희가 한 것이라고는 병원에서 가족들과 있는 거하고 여기 와서 신부님들, 모든 분들이 저희에게 사랑을 베푸시는 거, 그 많은 사랑을 받은 것밖에 없습니다." (고 윤용헌씨 부인 유영숙씨, 7월 28일)

 

원수 같던 경찰에조차 연민을 보낼 수 있게 된 것은, 매일 이어지는 미사가 유가족과 철거민에게 '든든한 빽'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노 총무는 "신부님들이 항상 머무르며 기도를 하시고 우리를 지켜주시니까 이제 경찰도 함부로 못한다"고 말한다.

 

29일 미사에서는 전국 시국 기도회와 관련된 작은 일화가 모두를 웃음짓게 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시국 기도회에 참석하는 인원은 늘고 있는데 마산, 수원, 전주에 이어 광주에서 열린 시국 기도회에는 2200여 명의 신도들이 참석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참석한 유가족이 많은 신도들에 압도되어 "1만6000명 왔어요. 신부는 몇 명 왔더라 (150명 왔는데) 한 300명 되죠?"라고 말한 것이었다.

 

"지난 월요일에 시국 기도회가 있다고 해서 전라도 광주에 다녀 왔습니다. 너무 많은 신도 분들이 와서 감각을 잠깐 잃었던 것 같아요. 성당이 어찌나 큰지 참 마음의 부담도 컸는데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같이 간 동지한테 몇 분이나 오신 거 같냐고 물어봤더니, (만 명 이상이라고 한 것은) 제 생각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상주가 웃는 거 좀 그런데요, 신도 분들이 만 몇 천 명 된다고 저는 곧이곧대로 믿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 정도는 되는 거 같아서, 너무 감격했고요. 항상 유가족들에게 많은 분들께서 울타리가 되어 주셔서 뿌듯했습니다. 앞으로도 전국에서 응원해주시는 분들과 함께, 유가족들 흔들림 없이 앞장서서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고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씨, 7월 29일)

 

덕분에 오랜만에 유가족들도 웃을 수 있었다.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 아무런 대꾸도 없는 정부, 수사기록을 공개하지 않는 검찰에 맞서 쉼 없이 달려왔다. 지칠 법도 하다. 그럴 때마다 추모 미사와 기도회를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며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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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중인 김인국 신부.
ⓒ 최재혁
용산참사

 

"여러분 지치지 마시고 힘내시고 기왕에 싸우는 싸움 웃음 잃지 마시면서 하십시다. 마음 한편에는 나름대로의 휴식처를 마련해서 기도하고 마음 다스리면서 우리 앞길 갈 때 지치지 않게 주님의 도움 청합시다." (김인국 신부, 7월 30일 미사 강론 중에서)

 

이강서 신부는 생명평화미사를 매일 진행하는 것에 대해 "유가족들이 미사가 위안이 된다고 하신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식사를 하듯이, 기도를 매일 하는 것이지 어쩌다 기도하는 것이 되어선 안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봉헌을 위한 초를 파는 일을 하는 박진근 신도는 연일 이어지는 봉사가 "힘든 것보다는 유가족들의 고통을 나누려고 하는" 일이다.

 

이외에도 많은 신도와 시민이 골목을 채운다.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미사를 찾은 명동의 한 가정 주부는 "용산참사에 굉장히 분노했다.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다르지만 광주와도 같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의정부에서 온 신도는 "사제단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지만 왠지 와 봐야 할 것 같았다. 평소엔 일이 늦게 끝나서 못 오다 이번에 휴가라서 올 수 있었다"고.

 

외국인들은 신기한 듯 사진을 찍어 간다. 휴가 차 한국을 찾은 미국인 에드워드는 "오늘 만난 신도에게 얘기를 들었다. 이곳에서 민간인 5명과 경찰 1명이 죽었다고 들었다. 사회의 병폐를 보여주는 이 같은 일은 어디에나 있다"고 말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연락해 달라. 기꺼이 관여하고 싶다"는 등 용산 참사에 큰 관심을 보였다.

 

"시청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다 보면 그 앞에 계란을 안고 있는 조형물이 있다. 서울시의 슬로건인데 창의 시정이라고 계란으로 바위를 깨는 것이 창의라고 한다. 우리도 서울 시민 아닌가? 계란으로 바위를 꼭 깨겠다." (전철연 회원, 7월 31일)

 

처음, 공권력이라는 바위 앞에 유가족과 철거민들은 철저히 약자였다. 하지만 '남일당 성당' 이 곳에서는 다르다. 이 곳에서 유가족과 철거민은 폭력적인 경찰보다, 외면하는 정부보다 강하다. 미사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로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른다.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을 다짐한다. 그렇게 하루를 접고 다음 날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