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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4.06 15:23 수정 : 2014.04.06 21:55 한겨레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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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전 의원은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생기’가 절실하다며 정의당을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필수품, 복지 전문당’으로 각인시킬 것이라고 했다. 옆자리에서 고기를 굽던 서울 노원구의 한 주민이 찾아와 노 전 의원과 술을 나누고 있다./한겨레 박승화


이혼했다 재혼하고 또 이혼한 남자
호빵맨 ‘노회찬’과의 삼겹살 데이트
“고등어 제아무리 맛나도 소금 없인 썩어”

전설의 ‘이빨’로 불렸던 사람이 있다. 말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소설가 조세희는 그를 일러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언어,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드는 뛰어난 언어를 쓴다”고 했다. 민주노동당 전성기 시절, 그가 웃는 모습을 보며 어떤 이들은 ‘호빵맨’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촛불의원’ ‘지못미의원’ 열기를 이어가던 2010년 어느 날, 한나라당 후보인 오세훈씨가 서울시장으로 당선되자 그는 역적으로 몰렸다. 이후 떨거지로 불리다 2012년 총선(노원병)에서 당선됐지만,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해 백수가 됐다. 그의 처지는 진보정당의 그것과 궤를 같이한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통합 이후 ‘새집증후군’ 논란이 한창이다. 진보정당들은 대중의 눈 밖에 나서 존재감조차 없다. 이번 지방선거가 진보정당에는 생존을 가르는 심판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3월19일 저녁, <나·들>이 서울 노원구에서 삼겹살이 가장 맛있다고 소문난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전국구 이빨 탄생의 신호탄이던 ‘삼겹살 불판’1 앞에서 음주를 겸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의 이름은 노회찬(58). 현재 공식 직함은 마들연구소 이사장이다.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은 삼성 X파일 판결에 따른 자격정지가 풀려 최근 정치인으로 복귀했다. 그는 “잘못된 학칙에 유기정학을 당했지만, 1992년 감옥에서 나온 뒤 처음 맞은 방학인 만큼 소중한 기회였다”고 했다. 노 전 의원이 건넨 종이명함 안쪽에는 긴부리도요의 윤곽이 새겨져 있었는데, 다리 부분을 빼곤 떼어져 있어 90도로 꺾으면 탁자 위에 세울 수 있었다. 긴부리도요 발 옆에는 이름 석 자와 트위터·페이스북 주소가 콩으로 만든 잉크로 찍혀 있었다. 환경 문제를 널리 알리라고 지인이 만들어주었다고 했다.

2004년 17대 국회 입성 뒤 점자명함을 처음 도입한 사람도 노 전 의원이었다. 그해부터 노 전 의원은 매년 ‘3·8 여성의 날’마다 여성 지인들에게 장미꽃을 보내고 있다. 촌철살인도 여전했다. 얘기가 심각해질 것 같으면 차진 비유를 구사해 ‘빵’ 터지게 했다. 하지만 웃음 끝에는 헛헛함이 묻어났다. 그도 진보정당도 ‘안녕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새삼 상기됐다.

나·들 - 정치인 중 삼성 문제로 의원직까지 잃은 유일한 사람입니다. 삼성 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요.

노회찬(이하 노) - 국민을 먹여살리는 기업임과 동시에 초헌법적인 존재예요. 한국이 민주화했지만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는 삼성을 다른 권력이 통제하지 못해요. 전두환 전 대통령 자리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있는 셈이죠.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더 진전하지 못합니다. 내수시장 활성화 등 삶의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삼성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해요. 저 혼자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지요.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나설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활동할 겁니다. 현재 스코어는 제가 지고 있지만 역사가 심판하는 제4심이 있을 거예요.  

나·들 -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통합했습니다. 정의당은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나요.

노 - 건강하게 경쟁하면서 유연하게 연대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습니다. 그런 점에서 후회되는 게 있어요. 참여정부 시절 민주노동당 원내 활동 당시 우리가 처음이라 정치가 서툴렀어요. 열린우리당과 따로 또 같이 하면서 스스로 가치를 올려야 했는데 못했죠. 그 결과 열린우리당 ‘이중대’라는 낙인이 찍혔어요. 노무현 대통령도 우리와 함께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우리도 마찬가지였죠. 일각에서 나오는 ‘빅텐트론’은 현실적이지 않아요.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지속 가능하지 못합니다. 정치활동의 작동 원리와 가치관이 달라요. 안타까운 건 여전히 ‘이기는 것’만이 ‘최고의 선’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거예요. 건물에 사람이 살 수 있는지 없는지 먼저 따져 재건축을 할지 리모델링을 할지 정해야 하는데, 도배부터 하자는 식이죠. 물론 박근혜 정권이 국민에게 가혹한 정권이라는 데는 동의합니다. 동시에 왜 연속으로 민주정부를 빼앗겼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데, 그 과정이 생략되고 있어요.

 

노회찬 전 의원과 삼겹살 불판을 사이에 두고 음주 인터뷰를 했다
‘독일식 비례제’ 제시하면 메피스토와도 거래

나·들 - 박근혜 정부가 2년차를 맞았는데 어떻게 평가하나요. 박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의료·철도 민영화 등 논란이 되는 현안들이 민주정부에서 시작된 일이라고 주장하는데.

노 - 민주당이 시작한 일을 계승하려면 민주당에 입당했어야죠. 보통 초등학생이 잘못하면 ‘형이나 아버지도 과거에 그랬다’는 변명을 해요. 중학생 정도만 돼도 그런 변명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못해요. 대통령으로서 할 변명이 아닙니다. 현 정권은 약점만 보이고 있어요. 부정선거 시비를 방어하고 반발한 사람을 찍어낸 것 말고는 한 일이 없습니다. 역으로 보면, 현 정권이 (문제를 악용하기 위해) 지적한 것에 대해 우리가 반성하고 해결하려는 작업이 부족하다는 방증이기도 해요. 현 정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이 공동 집권하는 ‘부녀정권’이라고 봐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금도 힘을 발휘하는 데는 야당이 그때보다 나아진 게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 모두 반성해야 합니다.   

나·들 - 앞서 답한 ‘우리’의 범주는 예민한 문제입니다. 2005년 참여정부 시절 “소연정도 안 된다”며 느슨한 연정조차 거부했던 대상(유시민 전 의원, 천호선 대표 등 국민참여당)과 현재 ‘통합’해 정의당 안에 함께 있는데….

노 -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은 진보정당 범주 안의 통합입니다. (국민참여당) 사람들이 참여정부 시절 행했던 실책에 대해 반성하고, 그 생각이 지속적이라면 같이 할 수 있다고 봐요. 함께 만든 정당 강령도 참여정부의 실책을 바로잡는 것이 많아요. 노무현 정부 때 연정 논의의 경우에도 제가 먼저 ‘개인적’ 견해를 전제로 소연정을 제안했어요. 독일식 정당명부제, 국가보안법 개정, 비정규직 차별 완화라는 조건을 걸었죠. 하지만 당 워크숍에서 완전히 깨졌어요. (웃음) 소신은 지금도 같아요. 유사한 조건이면 연정이 가능하다고 봐요. 특히 독일식 정당명부제로 다당제가 실현될 수 있다면 제 영혼도 팔 수 있어요. 진보정당의 존립 기반과 미래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떠한 대가도 치를 수 있습니다.  

나·들 - 정당명부제가 실행된 유럽을 보면 요즘 이상한 연정이 만들어져 그 제도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마지막 지점인지는 회의적인데요.

노 - 저는 다당제 찬성론자이지만 양당제 반대론자는 아닙니다. 가장 좋은 건 보수와 진보의 양당제지요. 하지만 한국 현실에선 쉽지 않아요. 양당제가 곧 영남당-호남당이니까요. 다당제 실시 뒤 나중에 다시 양당제가 되면 좋을지 몰라도, 현 구조로는 지역당 구조가 고착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철수 현상’의 바탕에도 지역당 구조에 대한 변화 욕구가 깔려 있다고 봐요.

 

진보정당은 변화에 대한 열망을 받아안지 못한 채 뺄셈정치만 반복했다. 2008년 민주노동당이 대선 패배 등으로 진보신당으로 분당된 뒤 또다시 통합진보당으로 이어졌다. 통합진보당은 국민참여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탈당파가 모여 만든 정당이다. 민주노동당 내 민족해방(NL) 계열은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 인천연합으로 구성된다. 이 중 경기동부연합이 ‘당권파’로 불린다. 민주노동당 내 양대 정파였던 민중민주(PD) 계열은 노회찬 전 의원처럼 통합진보당으로 들어간 사람과 진보신당을 고수한 이들로 갈렸다. 이후 통합진보당 사태가 벌어져 다시 진보정의당으로 분당했다. 지난해 진보정의당은 정의당으로, 진보신당은 노동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사회에서는 진보적 가치가 결핍되며 곳곳에서 신음이 터져나왔다. 노 의원을 만난 식당도 다르지 않았다. 교육, 집값, 노사 갈등, 원·하청 문제 등으로 몸살을 앓는 얘기가 귓전에 넘나들었다. 삼겹살이 자꾸 목에 걸렸다. 애꿎은 소주만 동났다.

나·들 - 정의당이 만들어진 과정을 보면 진보신당을 깨고 다시 당권파와 통합해 통합진보당을 만들었습니다. 그 후에도 소속 당이 바뀌었는데, 어떤 일관된 선택의 기준이 있었습니까.

노 - 운동권 정파를 아우르지 못하고 민주노총·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대중조직이 참여하지 않는 진보정당을 해선 안 된다는 게 신념이었어요. 2008년 민주노동당이 분당될 때도 저는 ‘분당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었어요. 하지만 나중엔 안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죠. 이혼했다가 재혼하고 또 이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결과적으로 보면 의미 없는 재혼일지 몰라도 제각기 따로 놓고 보면 가능해요. (당권파와 재혼할 때) 북한 문제와 패권 문제에 대해 다짐을 받았어요. 당권파가 먼저 패권주의를 인정하고 반성했어요. 북한 입장은 이미 민주노동당 시절 대중에게 여러 번 혼난 경험도 있고 대중의 눈이 있어 제어할 수 있다고 판단했죠. 정당은 서로 싸우지 않을 사람들만으로 할 수 없어요. 견딜 만한지 아닌지의 문제였죠.

민주노동당 분당 뒤 치른 선거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공약이 같았어요. ‘서로 싸웠기 때문에 따로 한다’는 건 국민에게 통하지 않는 얘기였죠. 2011년 진보신당(현 노동당) 당원 54%가 당권파와 합치는 것에 찬성했지만 3분의 2에 이르지 못해 결국 저는 당에서 나갔어요. 유사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함께할 것이라고 봤어요. 예상치 못한 통합진보당 사태로 또 깨졌지만. 그 뒤 발생한 이석기 의원의 행보는 상상도 못했죠. 통합진보당으로 통합할 때만 해도 당원이 아니어서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지금 현실을 보면 백번 욕먹어도 싸요.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그 판단에 대해 수백 번 복기해봐도 ‘맞았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진보세력이 스스로 살아남아 역할을 하려면 정치적으로 그 선택이 옳았다고 봐요. 노동당도 이젠 선택해야 해요. 끝까지 홀로 갈 것인지 합칠 것인지.

이혼, 재혼 또다시 이혼, 그 후

나·들 - 지난해 노원병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때 김지선(노 전 의원의 부인) 후보에 대해 지역구 세습 논란이 일었습니다. 마치 ‘소복 캠페인’을 벌이는 것처럼 비쳤습니다.

노 - 세습 논란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김지선씨는 제 운동 선배예요. 결혼할 때 저는 무명의 인텔리였지만 김지선씨는 모든 활동가들이 ‘누님’으로 모시는 사람이었어요. 저와 상관없이 노원구에서도 독립적으로 꾸준히 지역 활동을 해왔고요. 의원직 상실 뒤 지역 단체들이 먼저 ‘범시민 후보를 내야 한다’며 김지선씨에게 출마를 권유했죠. 그 뒤 당내 정당한 절차를 거쳐 당원들이 후보로 선출했어요. 당에선 서울 내 유일한 지역구여서 후보도 안 내고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제가 부부라는 관계를 이용해 절차를 무시하고 후보 자리를 뺏은 게 아니에요. 세습이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선거운동을 할 때도 노회찬 ‘부인’이라는 이유로 찍어달라고 하지 않았어요. 주민들도 ‘노회찬이 억울하다고 김지선을 찍을 수는 없다. 왜 김지선인가?’라고 물었어요. 그래서 김지선에 대해 알렸죠. 바깥에선 다른 건 안 보이고 노회찬 ‘부인’만 보였던 것 같아요. 일부 진보진영과 진보언론들도 김지선씨의 자질에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당시 참 많이 아팠습니다.

  

옆 테이블에 있던 한 주민이 노 전 의원에게 살갑게 인사를 건네왔다. 그는 소주 한잔을 권하며 “지켜보고 있으니 앞으로도 선전해달라”고 재차 당부했다. 노 전 의원은 “혼자 떠들어서 미안하다”며 소주잔을 받았다. 진보정당은 존폐 기로에 서 있지만, 진보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사그라지지 않은 걸까. 촛불, 희망버스, 무상급식 등에서 보듯 오히려 사회는 진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데 반해 이를 대변할 정당이 없는 것은 아닐까.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거대 야당이 탄생하면서 안철수 현상에 담겼던 제3당에 대한 열망이 진보정당으로 옮겨갈 수는 있을까.

 

노회찬 마들연구소 이사장이 연구소에서 담갔다는 '맑은 술 회찬주2'를 취재진에게 선보였다
그래도 대안은… 제대로 된 진보정당

나·들 - 정의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요.

노 -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필생기’가 필요해요. (웃음) 당 차원의 전략지역 지원 외에도 지방의원 수를 늘려 지역 활동의 거점을 높여야 해요. 이를 통해 정당으로서 기반을 확보하고 총선을 위한 디딤돌을 놓아야 해요. 이번 선거에서는 대중에게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필수품, 복지전문당’에 대한 내용을 알릴 계획이에요. 또 ‘진보정당 소금론’을 펼칠 예정입니다. 고등어가 제아무리 맛있어도 소금이 없으면 썩잖아요.

나·들 - 요즘 젊은 세대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요.

노 - 사회 환경 변화로 청년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보수화됐다고 보는 건 잘못된 시각이에요. 쉬는 동안 고등학생들이 만든 한 동아리에 초청받아 강연을 갔어요. 저도 고등학교 때는 나름 굉장한 청년이었어요. (웃음) 근데 제 고교 때보다 수준이 더 높았어요! 당원들 교육할 때 하는 얘기는 기본으로 알고 있더군요. 몇몇 사례로 일반화하기는 이르지만 희망의 싹을 봤어요. 진보정당이 청소년·청년 캠프 등을 열어 건강한 정치·사회 의식을 지닌 사람을 길러내는 일을 고민해야 해요.

나·들 - 세칭 명망가라 불리는 ‘노심조’(노회찬·심상정·조승수) 말고 새 인물이 안 보입니다. 후배를 안 키우는 건가요, 못 키우는 건가요.

노 - 한국에선 진보정치를 하는 게 천형처럼 인식되는 측면이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우선 ‘명망가’라는 말이 차별적으로 쓰이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요. 민주당과 새누리당 내 더 큰 명망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선 말이 없는데, 진보정당 내 명망가에 대해서만 말이 나와요. 이쪽에선 명망가가 마치 명망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처럼 폄하되죠. 진보진영에도 사람은 많아요. 다른 정당에 가면 날개 달고 훌륭하게 성장할 사람 많습니다. 하지만 운동권 특유의 집단주의·평균주의 탓에 안 크는 게 미덕으로 받아들여져요. 시대정신과 공공이익에 봉사할 수 있도록 건강한 권력의지를 가져야 하는데, 그런 의지가 죄악시돼요. 진보진영의 맹점이에요. 리더가 없어 헤매고 있는데 강력한 리더가 나타나는 것을 경계하죠. 이런 구조를 고치고 우리가 제대로 일하면 향후 10년 내 진보정당 집권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봐요.

나·들 - 전 지구적으로 보면 사민주의 국가에서조차 우경화 쏠림이 심화되고 있는데요.

노 - 사민주의만 갖고 할 얘기는 아니죠. 그쪽도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요동을 쳐요. 설사 그렇다 해도, 옆집 닭이 늙어 죽는다고 우리 닭이 부화도 못하나요? 최근 버스공영제와 무상버스를 놓고 논쟁이 일고 있는 것만 해도 진전이라고 봐요. 진보정당 운동을 20년 넘게 하고 있는데, 항상 제 시간표가 늦었어요. 노조 합법화, 진보정당 창당 등 현실이 상상보다 빨랐어요. 국민은 진보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요. 사회적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진보 깃발을 든 행위자의 문제임을 강조하고 싶어요.

나·들 -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씀은요.

노 - 박은지 노동당 부대표가 그리 되고,2 달려가 참 많이 울었습니다. 저 같은 선배가 잘해서 후배들이 일할 수 있도록 생활조건과 작업환경을 만들어줘야 했어요. 못난 선배죠. 후배들에게는 인간적으로 내 목을 수십 번 내놔도 시원찮을 정도로 미안해요.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제 선택이 맞다고 봐요. 진보정당은 지금 살아 있는 국민의 눈빛 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새롭게 만나야 합니다. 만신창이가 된 진보정당 내 상처를 치유해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필요하다면 어떤 것도 사양하지 않을 겁니다. 그게 무엇이든.

 

노 전 의원은 ‘유기정학’ 기간 동안 진보정당 활동에 대해 성찰하는 내용의 책을 집필했다. 이르면 4월께 출간된다. 그는 “그간 삶을 돌아보니 어떻게 먹고 살아왔는지 내가 봐도 미스터리”라며 웃었다. 이어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굴하지 않는 자부심과 정신력이 있었는데 그게 반은 망가진 것 같다”고 씁쓸해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은 비록 죽을 쑤고 있지만 희망을 놓지 못하는 뜨거운 열기가 내 가슴속에 있고, 이 열기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하고 싶지 않다”며 가슴을 치기도 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안철수로 향했던 대중의 정치 변화에 대한 열망이 급속히 식어가는 징후가 포착된다. 노 전 의원은 “트위터를 보거나 유권자들을 직접 만나보면 여전히 마음 둘 곳이 없어 방황하고 있는 걸 알 수 있다”며 “제대로 된 진보정당만이 그 열망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진보정당에 대한 꿈을 놓지 않는 것은 그 꿈 외에 다른 정치적 ‘대안’이 없다고 보기 때문인 듯했다. 물론, 그의 기준으로 볼 때 불판은 아직 한 번도 갈아진 적이 없다.

인터뷰 안영춘 편집장 jona@hani.co.kr

정리 김은성 객원기자 frame4@hanmail.net

1 노회찬 전 의원은 2004년 4·15 총선을 앞두고 “50년 된 불판을 갈아야 한다”고 말해 큰 화제를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