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

    사회

     9일 오전 서울 신문로 인디스페이스에서 박정희 정권의 유신시대를 증언하는 영화 '유신의 추억 - 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감독 이정황) 제작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유신? 김유신이요?"

    어두운 극장 안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9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 영화 <유신의 추억- 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총감독 이정황) 예고편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유신독재'가 아니라 '신라의 김유신 장군'을 떠올린 영상 속 20대 여성의 말이 우스우면서도 놀라운 모양이었다. 예고편에 등장하는 20~30대 젊은이들의 반응은 이 여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술자문을 맡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이 영화를 봐야할 사람은 젊은 세대들"이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유신'은 꼭 40년 전 10월 17일,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해 선포했던 '10·17 비상조치(10월 유신)'을 뜻한다. 다카키 마사오는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이다. 박 대통령은 10월 유신으로 국회의원 3분의 1의 임명권과 대법원장 등 모든 판사를 임명·보직·파면할 권한을 가졌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은 '긴급조치'를 위반한 범법자가 됐다. 헌법은 종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암울했던 유신시대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유신의 추억> 제작진은 서둘렀다. 지난 6월 영화 제작을 기획, 8월부터 촬영해왔다. "유신독재를 '역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이 그 야만의 시대를 바로 알도록" 하기 위한 일이었다. 이날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한완상 전 부총리는 "영화를 통해 역사를 온몸으로 느끼시길 바란다"며 "역사는 기억이고, 기억은 해석"이라고 말했다.

    "정확히 해석되지 않는 기억은 현재를 불행하게 하고, 미래를 깜깜하게 만든다. 이건 절박하다. 오늘의 역사를 정확하게 기억하지도 않고, 해석하지도 않는 사람이 불행한 역사를 똑같이 반복할 것 같아서 저는 2012년 12월을 걱정하고 있다."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이철 전 의원은 "유신 긴급조치와 인혁당 사건 모두 1인의 영구집권을 위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며 "'(유신의) 목적은 훌륭했는데 수단이 정당하지 못했다'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말은 사과가 아니라 변명"이라고 비판했다.

     한홍구 교수가 서울시내에 착검한 총을 든 군인과 탱크가 배치된 당시 상황을 사진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보행위반으로 '길거리 감옥'에 갇힌 시민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며 한홍구 교수가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탱크 총구는 시내를 향해놓고...'국가 안보' 때문에 유신을 했다?"

    "1972년 10월 (당시 대학로에 있던) 서울대학교 입구에 있다가 탱크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가 보니 한 대는 중앙청(현재 경복궁 인근에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 쪽으로, 한 대는 서울대로 와서 정문 앞에 주차했다. 총구는 시내를 향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국가 안보' 때문에 했다는 유신이다. 누가 동의할 수 있겠는가."

    유신시대의 야만을 증언하기 위해 영화 제작이 결정됐지만 진행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제작사 엠투(M2)픽처스는 총 1억 3000만 원 가량 투입될 예산을 일반 시민들의 모금으로 마련한다는 계획을 짰다. 현재 6천여만 원을 모은 상태다.

    이철 전 의원은 민청학련사건으로 받은 국가 배상금 일부를 후원하기도 했다. 유신체제를 선포한 '10월 17일'에 맞춰 1017명의 제작위원도 모집 중이다. 신경림 시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유인태 민주통합당 의원,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등 4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철 전 의원, 한완상 전 부총리, 김학민 M2픽처스 대표, 한홍구 교수, 이정황 감독.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제작발표회도 조용히 진행됐다. 김학민 M2픽처스 대표는 "그저께야 몰래몰래 문자로 (주변에 제작발표회를) 한다고 연락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 영화를 만든다고 사전에 얘기하는 순간, (자료로 쓸) 영상을 구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있었다"며 "이 또한 유신이 저희에게 준 내부 검열의 흔적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10월 23일 국회 시사회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나올 영화는 75분 49초 분량이다. 제작진은 대법원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당한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8명의 넋을 기리기 위해, 사형집행일인 '1975년 4월 9일'에 상영시간을 맞췄다. 영화 중간 중간에는 당시 상황을 풍자한 임진택 판소리꾼의 판소리를 삽입할 예정이다.

    제작진은 "박정희 유신독재 하에 희생된 최종길 서울대 법대 교수, 인혁당 재건위사건 피해자 8명과 장준하 선생 등에게 이 영화를 헌정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