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권 보류 진짜 이유? ‘빨갱이 김구가 싫어’
[뉴스 쏙] 우익세력의 ‘백범 혐오’…그 오래된 미래
한겨레 김진철 기자 김명진 기자
» 10만원권 암살 지령…표적은 ‘김구 저격’.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독도 빠진 대동여지도는 그저 핑계일 뿐
한국은행 관계자도 실토했다
“뉴라이트·청와대가 백범 싫은 눈치”라고

“김구=빨갱이, 이승만=건국의 아버지”
정권교체뒤 공식화된 ‘뉴라이트 역사공정’
우익들의 염원은 이미 반쯤 이뤄졌다

역사의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일까.

백범 김구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58년, 그리고 우남 이승만 전 대통령은 세상을 떠난 지 43년이 됐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결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남북 공동정부 수립을 주장했던 백범이 암살로 생을 마친 반면 우남은 미국의 지원으로 남한 단독정부를 수립하며 초대 대통령에 올라 정치적 승자가 됐다. 하지만 우남의 영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역사의 승자는 김구였다. 이승만은 국민들이 혁명으로 권좌에서 몰아낸 독재자로 전락했고, 김구는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민족의 영웅이 됐다.

최근 이 역사적 승패를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민족주의자의 사표로 꼽혀온 백범을 평가절하하는 대신 이승만을 치켜세우려는 흐름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극우세력의 ‘김구 죽이기-이승만 살리기’ 역사공정이 보수정권의 집권으로 탄력을 받는 모습이다. 김구 초상이 들어가기로 한 10만원권 발행이 최근 전격적으로 유보된 것이 그 신호탄이 될 조짐이다.

“독도는 핑계, 결국은 김구 때문이다”


10일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는 “정부의 요청으로 10만원권 발행 작업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일단 내세운 이유는 뒷면에 들어가는 대동여지도에 독도가 표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5만원권 발행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그러나 정부와 한국은행의 석연찮은 결정 때문에 10만원권 발행을 유보한 진짜 이유가 김구의 초상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해지고 있다.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도 있다”는 강만수 장관의 발언은 의구심을 더욱 부추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역시 “발행 중단을 요청한 정부로부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통보가 온 것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실제 한국은행은 이미 2달 전인 9월부터 10만원권 관련 작업을 중단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대동여지도 필사본에 독도가 나와 있으므로 이를 참고해서 그리겠다고 이미 정했는데 정부가 중단시킨 것”이라며 “독도는 핑계고 진짜 문제는 김구라고 다들 보고 있다”고 말했다. “뉴라이트와 청와대 쪽에서 김구를 싫어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작업을 중단해놓고 발표 시점을 늦춘 것은 국감에서 이슈 되기 싫으니까 미룬 것이다.”

실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10일 국감 질의에서 유보 방침을 밝히기 전인 지난달 23일 국정감사에서도 “아직 공식적으로 이야기할 상황은 아니지만 5만원권, 10만원권 발행과 관련해 10만원권은 여건상 시급하지 않은 것 같다”며 “경제사정이 어려운데다 사실상 5만원권을 발행하면 거의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데 10만원까지 발행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라고 운을 뗐다.

이 때문에 백범 추모단체들과 야당에선 정부가 김구를 폄하하려는 우익단체들과 손발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달 14일 보수단체들이 한국은행 앞에서 ‘10만원권은 이승만, 5만원권은 박정희’라는 주장을 펼치며 시위를 벌이고 이틀이 지난 뒤 한국은행이 ‘10만원권 발행 연기 검토’를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뉴라이트가 떠드니까 정권이 지폐 인물을 이승만 박정희로 바꾸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며 “애초부터 그쪽에선 반대해왔지만 국민적 합의로 됐던 건데, 정권이 바뀌자 얘기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우익 백범이 좌익이라고?

백범은 대표적인 우익 인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뉴라이트를 비롯한 한국의 우익은 해방 이후 줄곧 ‘김구포비아’( ‘김구 공포증’, 김구 + ‘병적인 혐오’란 뜻의 단어 ‘phobia’)라 할 만큼 김구에 대한 적대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지난해 10만원권 인물로 백범 김구가 선정됐을 때도 강하게 반대했고, 정권 교체 이후 반대 여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더욱 힘써왔다.

한국 우익들은 무엇 때문에 백범을 꺼리는 것일까? 우선 꼽히는 이유는 백범이 우파 같지만 실은 좌파라는 시각이다. 우남 이승만 연구회 회장인 이주영 건국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2006년 9월 ‘친북반국가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주최 세미나에서 한국의 좌파를 △마르크스-레닌에 기반한 그룹 △전통적·토착적 세력 △미국·유럽에서 박사를 받고 온 그룹으로 구분한 바 있다. 이 교수는 여기서 전통적·토착적 좌파가 한국 좌파의 주류이며, 정약용-전봉준-김구-김대중으로 이어져 내려온다고 규정했다.

또한 백범이 남한 단독정부 수립보다는 남북한 통일정부를 바라면서 북한을 아우르려 했다는 점을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좌익은 아니지만 좌익과 연대하면서 김일성을 지원했다는 주장이다.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 소장(군사평론가)은 “김구가 좌익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북한 정권 세우는 데 일조하고 또 북한에서 주는 통일상도 받았다”며 “48년에는 북한에 가서 북한 정권을 찬양하는 연설도 했다”고 주장했다.

백범이 의식적으로 좌익을 지원한 건 아니지만 좌익에 이용당했다는 의견도 있다. 양동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백범은 명확한 우익이지만 좌익과 연대한 것은 사실”이라며 “북조선 인민위원회가 이미 만들어지고 남한까지 공산화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이런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역사학계, “백범을 빨갱이로 몰지 마라”

우익들이 백범을 좌편향 인사로 보는 데 대해 역사학계에서는 어림없는 소리라고 반박한다. 이는 보수 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백범학술원장인 신용하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김구가 해방 정국에서 ‘우익의 영수’였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잘라말했다. “백범이 북진통일을 반대하고 평화통일을 위한 협상을 시도했기 때문에 좌익으로 모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평생 우익이었던 백범에게 터무니없는 누명”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백범이 당시로서는 민족주의자였는데 이승만 박사는 남한 단독정부를 먼저 수립하고 북진통일을 하자는 노선이었고 백범은 참혹한 내전을 불러오니까 처음부터 통일 정부로 건국하자는 입장이었다”며 “이를 위해 북쪽과 협상을 해보자는 것이었고, 당시 한국 민족 다수의 바람도 같은 것이었다”고 말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도 “백범은 47년 분단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까지 분단을 막고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북행을 결단했던 것”이라며 “이는 임시정부 때부터 주장해왔던 것으로, 좌익에 이용당한 것도 김일성을 지원한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백범을 좌익으로 보는 쪽에선 김구가 이승만을 견제하기 위해 건국을 반대했다고 주장한다. 이주영 교수는 “백범과 우남은 이해관계가 다르긴 했어도 해방 뒤 반탁운동 등에서 노선이 일치했지만, 47년 말 이승만 박사가 (정치적으로) 유리해지면서 백범이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해서 이승만과 갈라져 김규식과 손잡게 된 것”이라며 “백범은 남북이 완전히 분단된다면서 건국을 반대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 우익 김구에 빨강색칠이 시작됐나

우익들이 백범을 견제하는 것은 백범을 꼭 싫어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우익의 상징으로 세우고 싶어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건국절 논란에서 불거졌듯이 좌우가 함께 일궈온 독립운동의 정통성보다 광복 이후 ‘건국’에 맞춰 우익 중심으로 현대사를 재구성하고 싶어하는 우익들이 건국의 아버지로 이승만과 박정희를 내세우려 한다는 것이다.

<백범일지>를 엮어 옮긴 도진순 창원대 교수는 이런 양쪽 시각 사이에서 균형 평가를 시도한다. “70년대 이전까지는 독립운동의 우파적 대표로서의 김구만 선양의 대상이 됐다. 그러다 70년대 백기완·문익환 등이 김구의 후반기, 통일로 마친 인생에 주목했다”고 김구 연구의 흐름을 설명했다. 도 교수는 “김구를 비판할 수 있는 부분은 오히려 독립운동에서 한·중·일 정도를 넘어서는 사고를 적극적으로 해본 적이 드물다는 점”이라며 “냉철한 현실주의적 정치감각을 가진 현실주의자 입장에서는 낭만주의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도 교수는 “김구가 딱 부딪히는 벽이, 당시 한반도가 국제정치와 담 쌓고는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살리기 어렵다는 건데, 이런 면에서 이승만은 굉장히 탁월한 면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권 교체 뒤 바람 타는 ‘이승만 다시 세우기

백범에 대한 기피와 맞물린 우남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은 올해 이명박 정권 출범과 건국 60돌을 맞아 우익 진영에서 활발히 제기되고 있다. 일단 우익들은 이번 논란이 된 지폐 속 인물 선정과 동상 건립을 이승만 다시 세우기의 상징적 작업으로 이뤄내겠다는 구상이다. 이승만 동상을 건립해 그의 치적을 알리는 한편 화폐 인물 역시 김구에서 이승만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흐름은 보수언론이 먼저 이슈를 제기하고 보수단체들이 언론의 주장을 받아 목소리를 높이는 식으로 호응을 이루면서 진행 중이다. 꾸준히 이승만 재평가를 주장해온 <조선일보>는 올해 초 이승만 동상이 현재 국내에 3개밖에 없다고 지적하면서 우남을 ‘건국 대통령’으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올해 6월 배재대에서는 6월 민주항쟁으로 철거됐던 이승만 동상이 논란 속에 다시 건립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00년 배재학당을 졸업한 것을 기리는 동상이다. 그리고 8월15일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단체들은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한 범국민감사 한마당’을 열고 이승만 동상 건립 사업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대표적 우익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도 이들과 별도로 이승만 동상 건립 운동을 시작했다. 자유총연맹은 서울 남산 자유센터 안에 내년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기로 하고 예산 10억원을 확보하기 위해 회원들을 상대로 성금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화폐 인물 논란에서 시작된 후대의 정치게임은 이제 동상으로 옮겨 2라운드를 펼칠 조짐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