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들녘을 걸어본다. 혼자가 아닌 둘이다. 항상 이맘 때면 나락이 노랗게 익어가는 들녘을 걷곤 했다. 가을바람에 누런 빛을 한 나락잎들이 사그락거리는 논두렁길을 걷다보면 이러저런 즐겁고도 아픈 추억들이 실지렁이처럼 아른거렸다. 그러나 그 추억이라는 것도 세월 속에 버물려지면 아픔도 기쁨도 하나가 되었다. 추억비빔밥이 된 것이다.

 

늘 혼자 걸었던 논두렁길. 동행자는 동생이다. 형은 반듯하게 자란 나락들을 바라보며 긴 호흡을 하며 가을을 마시는데 동생은 긴 한숨을 내쉬며 가을을 뱉어낸다. 농사 욕심 많은 동생의 한숨의 원인은 쌀값 하락이다. 올핸 큰 태풍이나 병충해도 없어 작년에 비해 농사가 괜찮다는데 동생은 긴 한숨을 내쉬곤 했다.

 

"쌀값이 얼마나 떨어졌는데 그래?"

"13만 원 대로 떨어졌어. 그거면 본전은커녕 완전 적자야."

"작년엔 얼마였는데?"

"15만 원은 했지. 쭉정이도 안 남아. 안 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고 미치겠어."

 

동생은 농사를 많이 짓는다. 올해도 본인의 논과 남의 논까지 합쳐 30필지 이상을 짓고 있다. 대부분의 농사를 손수 짓는 동생이 올해 쌀값 하락으로 사오천만 원 정도의 피해를 입을 거라 한다. 얼마 전에 조벼 나락을 수확하여 5만원도 안 되는 헐값으로 나락을 내놓았다 한다.

 

실제로 나락 수매가를 보면 지난해보다 많이 떨어졌다. 지난해의 경우 40㎏ 한포대당 5만 2000~ 5만 4000원대를 웃돌던 수매가가 올해는 4만 원대로 떨어졌다. 올해엔 한포대당 5천~ 6천 원 정도 떨어진 가격으로 수매가가 형성될 거라는 전망이다. 일부에선 정부에서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쌀값도 마찬가지이다. 생산농가에서 80㎏ 쌀 한 가마당 최소 16만 원 이상은 돼야 겨우 생산원가를 맞춘다. 지난해 생산지 쌀값이 15만에서 16만 원 선이었다. 그런데 올해엔 13만 원대까지 하락을 했다. 이정도의 쌀값으론 적자를 면할 수가 없다. 자작농이 아닌 소작농의 경우엔 비료값 농약값도 건지기 힘들다. 가을 들녘은 풍년인데 마음은 흉년을 맞고 있다.

 

대북 쌀 지원 통해 쌀 재고량 줄여야

 

그렇다면 왜 이리 작년에 비해 쌀값이 하락할까. 농민단체들은 쌀값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을 대북 쌀 지원 중단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02년부터 정부는 매년 40만~50만 톤의 쌀을 북한에 보내 북한의 식량난도 해결하고 국내 쌀값 하락도 막아왔다. 그러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북 쌀 지원이 중단되었다. 여기에 외국쌀의 수입도 늘어났고, 쌀 소비도 감소되면서 쌀 재고량은 점차 늘어났다.

 

이런 쌀 재고량의 증가는 쌀을 보관할 창고의 부족 현상을 초래했다. 나락 수확기를 맞아 농민들이 나락을 수확해도 농민들은 판매를 못하는 상황까지 왔다며 아우성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농민들이 쌀값 폭락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를 해도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이에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는 농민들은 절망과 분노의 삭발까지 하지만 '마이동풍'이다.

 

사실 정부에서 내놓은 쌀값 안정 정책으로 내놓은 게 있긴 있다. 정부가 농형중앙회를 통해 지난해의 쌀 중 10만 톤을 사들여 시장격리 시킨다는 정책이다. 그러나 농민단체들은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10만 톤의 시장격리도 '완전시장격리'가 아니라 농협 차원의 시장격리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대다수의 농민들과 농민단체들은 대북 쌀 지원을 통해 재고량을 줄이고 '쌀지원법제화'를 촉구하고 있다. 헌데 그런 외침들은 농민들만의 외로운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다. 정부는 물론 각 지방단체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그저 힘없는 농민들과 농민단체만이 절망의 한숨을 분노의 외침으로 삭발을 하고 혈서를 쓰고 있는 실정이다.

 

농림수산부의 장관의 안일한 생각이 작금의 현실이다

 

지난 24일 장태평 농림수산부 장관의 인터뷰를 들었다. 장 장관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현해 농민들이 쌀값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인식의 발언을 했다. 그는 최근의 쌀값 하락에 대해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가격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쌀 소득보전 직불제라는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어서 쌀 한 가마에 16만7천 원 가량은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지금 각 지역의 농민들은 쌀값 폭락에 대책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지금 쌀 생산지에서 거래되는 쌀 한 가마의 가격대는 13만 원에서 14만 원대다. 앞서 말했지만 이 가격은 비료값, 농약값은 고사하고 품삯도 안 나온다는 게 농민들의 말이고 절규다. 그런데도 장 장관은 현실을 낙관적으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농민단체들이 쌀값 안정대책의 하나로 주장하고 있는 '대북 쌀 지원'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표출했다. 그는 대북 쌀 지원이 쌀값 안정에 근본적인 대응이 될 수 없다며 쌀 가공식품을 확대하는 방안이 대응책이라는 일반적인 발언만을 하고 있다.

 

사실 쌀 확대 방안의 하나로 거론된 쌀 가공 식품을 늘리자는 주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쌀값 파동이 있을 때마다 정부 관계자는 가공 식품을 확대하는 방안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후속책은 없었다. 구체적인 방안은 준비하지 않고 일반적인 발언만 하고 있을 뿐이다. 지금 정부에서 농민들에게 해줘야 하는 것은 농심을 달래만한 구체적인 쌀값 안정 정책을 내놓는 일이다.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쌀은 생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