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문건 파문 전 농업계로 확산
농진청폐지 실패 후 치밀한 계획 전모 드러나
농민단체, “장태평장관 경질하라”
농업계 전문가, “발상전환으로 현위기 타개해야”
2009년 10월 30일 (금) 14:49:05 김규태 기자 kgt7777777@naver.com

한 나라의 농업정책을 집행하는 농림수산식품부가 정보 기관에 농민들의 민원을 해결 해 줄것을 의뢰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27일 오마이뉴스에 의해 농식품부가 농민들의 민원을 국가정보 기관인 국정원에 의뢰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전 농업계가 충격에 휩싸여 있다. 농민들은 “농업계 수장이 스스로 농업계를 이끌 수 없는 무능력을 보인 추태”라면서 망연자실 하고 있다.

농민 내부의 동력을 바탕으로 농업정책을 추진 해야 할 농식품부가 농업계 외부의 힘을 빌려 농업정책을 펴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정식으로 들어 서기도 전인 인수위원회 때부터 현장 농민들과 상관 없는 정책을 펴면서 첫 단추부터 어긋나기 시작 했다.

농진청폐지 실패에서 얻은 교훈

이명박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농진청폐지 시도가 농민들의 저항으로 무산된 것을 교훈 삼아 농식품부는 보다 더 철저한 계획을 세워 나갔다. 농식품부의 치밀한 계획의 핵심은 농민들 내부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할 수 있는 주체를 건설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발각된 문건을 통해 농식품부는 자생적 농민조직인 전농의 영향력이 다른 농민 조직에 파급 되는 것을 차단 하기 위한 목적으로 농민단체간의 분열을 조장 하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전농의 한 관계자는 “농식품부는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는 단체들을 대상으로 정부 정책에 찬성 하도록 협박 했다”고 말했다. 지난 봄에 전 농민단체를 대상으로 ‘준법서약서’를 받은 것이 바로 그것 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농민단체들이 이 서약서에 서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 농식품부가 전 농민단체에 보낸 확약서 사본. 전농과 전여농 관계자는 서약서 작성 거부 이후 정부로부터 받은 돈은 0원 이라고 밝다.

 당근-채찍 정책으로 협조 세력 구축

이후 농식품부는 자신들에게 협조 하는 조직들을 중심으로 농업정책을 펴 나가기 시작 했다. 독재의 망령 이라며 서명에 동참 하지 않은 전농과 전여농은 이후 정부 정책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제 됐다. 이들에게는 자금 지원은 물론 정보도 제공 되지 않았다. 현장의 농민들이 밀실 행정을 항의 하자 농식품부는 전농과 전여농이 선진화위원회에 참여 하지 않은 때문이지 밀실 행정은 아니라며 떳떳하게 대응 했다. 농식품부는 철저한 당근-채찍 정책을 통해 정책을 실현할 조직을 관리 해 온 것이다.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과 전농 광주전남연맹 소속 농민들이 지난 8월 29일 전남 나주 남평농협에서 농정현안을 놓고 간담회를 열고 있다.

이날 농민들이 “농업선진화 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항이 전혀 외부로 공개되지 않고 논의 자료마저 공개되지 않아 밀실행정이라는 비판이 높다”고 주장 하자 장 장관은 “전농, 전여농만 농어업 선진화 위원회 회의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밀실 협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광우병, 농진청폐지, 직불금...이번엔 쌀대란

광우병파동, 농진청폐지사건, 논농업직불금사건에 이어 이번엔 쌀대란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현장에 기반 하지 않은 농식품부의 정책은 성공할 수가 없었다. 선진화위원회를 통해 농업정책을 실현해 보려는 농식품부의 계획에도 불구 하고 또다시 현장과 괴리 되면서 쌀대란을 야기 하고야 말았다.

결국 또다시 현장이 문제가 된 것이다. 쌀대란이 현실화 되면서 현장 곳곳에서 논을 갈아 엎고, 농협RPC를 봉쇄 하는 등 농민들의 항의가 전국적으로 번져 나가기 시작 했다.

서약서 등으로 서울에 있는 농민단체 지도부들의 발은 묶어 놓았지만 생존권을 위해 항의 하는 농민들의 시위는 소속 단체 지도부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번져 나가면서 농식품부가 이성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현장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에는 관심도 없고 당장 발 밑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만 급급해 하고 있다. 이번에 밝혀진 문건이 현재의 농식품부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번 문건으로 농식품부가 현장을 전혀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 증명 되고 있다. 농식품부는 농민들의 생존권 항의를 ‘쌀값과 관련성이 적은 계획적이고 연례적인 행동’으로 파악 하고 있다. ‘농민들의 행동이 농정 현안 해결 보다는 대북지원, 투쟁기금 확보 의도’라고 못박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된 농식품부 문건 전문>

또한 이번 문건으로 그동안 농식품부가 자금 지원을 통해 농민단체들을 길들여 오고 있음이 밝혀졌다. 자금 지원이 끊긴 농민들이 투쟁 기금을 확보 하기 위한 방편으로 쌀투쟁을 하고 있다는 농식품부의 분석이 이러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 하고 있다는게 문건을 접한 사람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따라서 농식품부의 대책이 농민들의 생존권 투쟁이 타 농민단체로 번지는 것에 집중 되어 있는 것은 당연 하다는 것이다. 농식품부가 경찰과 국정원 등에 협조 요청을 하고 청와대에도 보고한 사실도 이러한 위기 때문 이라는 분석이다.

한마디로 농식품부의 쌀대란 대책은 그동안 함께 해 온 협조 단체들이 현장 농민들과 결합 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집중 되어 있다. 현장 농민들과 함께 과격한 시위라도 하게 되면 자금지원을 끊겠다는 협박과 함께 전농에 대한 철저한 탄압을 통해 이들 단체들이 이탈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을 문건이 잘 설명 해 주고 있다. 농식품부는 과격시위 단체에 대해 ‘온정 없는 강력한 처벌’을 해 달라고 경찰청에 협조를 의뢰 했다고 밝히고 있다.

현장에 속수무책인 농식품부

그러나 현실과 동떨어진 농식품부의 대책은 또다시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서울의 지도부와는 달리 현장 농민들까지 통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에서 공무원들을 동원해 농민들을 설득 하고 있는 것이 포착 되고 있지만 생존권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이 빠진 설득으로 현장 공무원들만 뭇매를 맞고 있다.

실례로 경기도의 한 지역에서 쌀 문제로 농민들이 모인 현장에 담당 공무원이 배석 하여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단체가 이러면 곤란하다”며 농민들을 설득 했지만 오히려 농민들로부터 “당신 나가라”는 호통만 받았다. 그 공무원은 “그러면 데모할 때 다른 이름을 사용해 달라”고 호소 하면서 현장을 나와야 했다.

문건을 통해 드러난 농식품부의 무능함

이번 농식품부의 내부 문건 유출관 관련 농업계 인사들은 ‘무능력한 농식품부가 이젠 자신감 마저도 상실 했다’고 진단 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 하고 적극적으로 돌파 해도 어려울 판에 문제 조차도 제대로 파악 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선진화위원회와 관련 해서도 농식품부의 편의적인 정책 방향을 지적 하는 목소리가 높아 가고 있다. 전농과 전여농이 선진화위원회에 불참 하고 있는 것을 명분으로 쉬운 상대만을 대상으로 농업정책을 펴는 것은 자신감 없는 소극적인 태도 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적당히 쓴 소리만 하는 것으로 농업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라면서 전농과 전여농의 선진화위원회 불참을 아쉬워 했다. 그는 “그렇다고 이 참에 잘 됐다는 식으로 전농과 전여농을 따돌리고 있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면서 “비록 선진화위원회에는 참여 하고 있지 않지만 이들의 주장 까지도 농업 발전의 동력으로 활용 하지 못하는 농식품부 장관의 지도력에 실망 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농식품부의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 전농과 전여농은 ‘원래 그랬는데...’하면서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농의 한 관계자는 “농식품부가 아무리 그래 봐야 현장을 제대로 읽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 했다. 그는 “농식품부가 농민들을 주체로 농정을 펼치는 자세만 보였어도 우리가 선진화위원회에 불참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건의 지목 당사자인 전농이 29일 여의도 국회앞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태평 농식품부 장관의 경질을 요구 하고 있다.

벌집이 된 온건(?)농민단체들

또한 문건에 등장 하는 온건(?) 단체들도 이번 문건 유출로 매우 곤혹 스러워 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으로 운영 되고 있는 조직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번 쌀대란과 관련 정부와 한통속 이라는 오해를 받고 있는 것도 이들의 심사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소위 온건 단체로 지목 되고 있는 단체의 한 인사는 “선진화위원회에 참여 하면서 도대체 뭘 했냐는 회원들의 항의가 있었다”면서 난감해 했다.

한편, 오마이뉴스가 문건을 공개 하던 바로 그날 협동조합개혁위원회(위원장 김완배 서울대 교수)는 성명을 내고 “농식품부에 농락 당했다”며 해체를 선언 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본 위원회는 더 이상 농림수산식품부의 허수아비나 노리개가 되고 싶지 않기에 스스로 해체 하고, 전국 농민의 간절한 염원을 짓밟는 음모를 저지 하기 위한 최전선에 나서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날 과천 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김완배 농협개혁위원회 전 위원장(서울대 교수)은 “농협개혁위원회 안에 동의 하는 모든 세력들과 함께 길거리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연합 소속 단체들이 10월 30일 과천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민단체간 분열을 조장한 장태평 장관의 경질을 요구 하고 있다.

발상전환으로 현 위기 타개해야

올 가을 쌀 대란은 봄부터 예견 되어 왔다. 많은 전문가들이 쌀대북지원이 중단 되면서 누적된 재고미와 해마다 늘어 나는 쌀 의무 수입 물량(MMA물량)을 지적 하며 대책을 주문 해 왔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해마다 줄어 드는 국민들의 쌀 소비량만 탓 하면서 새로운 쌀 시장 개척 방안으로 쌀가공산업에만 몰두 하고 있다.

결국 이번 쌀대란은 농식품부의 직무유기로 빚어진 결과라는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전체적인 구조적 문제를 보지 않고 지엽적인 방법에만 의존한 대표적인 직무유기라는 것이다. 농민들은 농식품부의 쌀가공산업은 수입쌀 팔아주기 대책 이라며 실소를 보내고 있다.

문건 파문에도 불구 하고 농식품부의 직무유기는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 문건 파문 2일 후인 지난 10월 29일 한국농정신문은 “수확기 쌀값 근본적 안정화 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 했다. 그러나 농식품부는 여전히 쌀가공산업 활성화를 주장 했고, 국책연구기관인 농경연 관계자는 현장과는 상관없는 시장 논리만을 주장 했다. 당연히 농민들의 원성어린 질문들이 날카롭게 농식품부와 농경연 관계자에게 꽂혔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농식품부가 발상의 전환을 해야만 농업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생각만 바꾸면 북한 까지도 우리의 시장이 될 수 있는데 꽉 막힌 생각 때문에 있으나마나한 대책만 내 놓고 있는 것이라고 질타 했다.

   
지난 10월 29일 한국농정신문과 농업회생을위한 국회의원 모임 공동 주최로 열린 쌀토론회에서 강기갑 공동의장이 이번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 “현장 농민들의 고충을 해결 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정부 부처를 뛰어 다니며 협조를 요청 해야 할 농식품부가 거꾸로 국정원과 경찰에게 농민들을 진압해 달라고 부탁 하고 있다”면서 농식품부를 강하게 성토 하고 있다.

 

   
지난 29일 국회에서 진행된 쌀토론회 토론자로 나온 장경호 건국대 겸임교수는 쌀대북지원을 주장 하며 “북한이 비료 공장을 가동 하기 시작한 만큼 2~3년 안에 식량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그렇게 되면 남쪽의 쌀과 북쪽의 임산물을 교환 할 수 있는 중요한 시장이 될 수 있다”면서 정부에 대해 발상의 전환을 촉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