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어머니’ 아들 전태일 열사 곁으로…
등록 : 20110907 20:28 | 수정 : 20110907 22:32

 

1500여명 ‘민주사회장’ 엄수
한진중 해고노동자 ‘대형걸개그림’ 들고 운구행렬 앞장
양대노총 “차별없는 세상 위해 힘모을 것” 고인 뜻 새겨
‘전태일 다리’서 노제 뒤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옆 안장

» 어머니, 영면하소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의 운구 행렬이 7일 오전 영결식 장소인 서울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으로 향하고 있다. 고인은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아들의 묘지 인근에 안치됐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사람 사는 세상이 돌아와 너와 내가 부둥켜 안을 때 모순덩어리, 억압과 착취 저 붉은 태양에 녹아내리네….”

7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어머니’라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노동자의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함께한 300여명의 아들·딸들은 노래를 부른 뒤 “어머니”라고 외치며 눈시울을 붉혔다. 쌍용차·기륭전자·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은 땀이 밴 안전모와 펼침막, 조끼를 관 앞에 바쳤다. 어머니의 관 위에 흙을 붓던 딸 전태리(53)씨는 “엄마, 천국에서 만나요’라며 울먹였다. 하관예배에 참여한 이해동 목사는 “키도 작고 몸집도 작았지만 그 생각은 깊고 넓은 분이셨다”고 말했다.

지난 3일 별세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가 아들이 잠들어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돼 영면에 들었다. 고인의 장례는 이날 ‘민주사회장’으로 엄수됐다.


» 이소선씨의 장례가 치러진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5가 전태일 흉상 앞에 어머니인 이씨의 영정이 놓여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앞서 이날 아침 빈소가 마련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고인이 생전에 다닌 창신교회 이종복 목사가 사회를 맡아 발인예배가 열렸다. 고인의 아들 전태삼(61), 딸 전순옥(57)씨 등 유족을 비롯해 손학규 민주당 대표,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노회찬·심상정 전 의원, 이재오 특임장관,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어머니 등 120여명이 함께했다.

발인 예배 뒤 운구행렬은 영결식이 열리는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을 향했다. 노동자와 시민 500여명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따랐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이 젊은 시절의 고인이 전태일 열사의 영정을 안고 있는 대형 그림을 들고 앞장섰고, 그 뒤를 손자 전동명·동주씨가 영정을 안고 따랐다. 하얀 국화로 장식된 상여는 노동자 40명의 손에 들려 영결식 장소에 도착했다. 흰색과 검은색 천에 ‘어머니, 태일이 만나 훨훨 춤추소서’, ‘편히 쉬세요. 노동자의 어머니’ 등이 적힌 81개의 만장이 바람에 나부꼈다. 상임장례위원장인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은 영결식 개식사에서 “자식의 유언을 가슴에 안고 사십년 한길로 걸어오신 이소선 어머니! 어머니의 그 거룩한 뜻을 우리들 잊지 않고 오래오래 간직하겠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앞줄 오른쪽 다섯째부터),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활동가 등이 이날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씨의 장례행렬을 따라 서울 동대문 네거리를 지나 전태일 흉상이 있는 종로5가로 향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고인이 생전에 수차례 한 당부대로 이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하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은 추도사에서 “어머니의 호소와 발걸음은 어두운 사회의 횃불이 돼 퍼져나갔고 이제 노동자의 어머니로 모두의 가슴속에 타오르고 있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하라는 말씀 가슴 깊이 새기겠다”고 다짐했다.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도 “어머니께서 그토록 하나 되길 바라시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서러운 국화꽃을 들고 있다”며 “두 노총이 힘을 모아 차별 없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아들 전태삼씨는 “어머니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다’, ‘어려움을 피하지 않는다’는 이 두 가지 말씀을 가슴에 새기겠다”며 “어머니를 찾아와주신 여러분이 이소선 어머니셨다. 찾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울먹이며 답례했다.

시간이 지나며 마로니에공원 앞 도로는 1500여명의 노동자들과 시민으로 가득 찼고, 이들은 고인의 생전 영상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출근길에 상여 행렬을 보고 눈물을 흘린 이미선(44)씨는 “전태일 평전을 읽고 어머니에 대해 알게 됐다. 평범한 한 어머니가 역사의 한 장을 남기셨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정상채(57)씨는 “자식과의 약속을 지키는 삶이 참 힘들었겠다는 생각도 든다”며 “아직도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데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사라져 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영결식을 마친 뒤 이화사거리와 동대문을 행진해 종로구 종로5가 청계천 ‘전태일 다리’에서 오후 1시에 노제를 열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도 참여했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이소선 여사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큰 어머니 역할을 해오셨다”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약자의 편에서 함께 길을 걸으셨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 이소선씨의 하관식이 7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 있는 아들의 묘 근처에서 참석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수되고 있다. 남양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