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진숙 “정리해고 철회할 때까지 안 내려갈 것”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152일째 고공농성... 트위터로 세상과 소통

김보성 기자 press@vop.co.kr 입력 2011-06-06 14:54:27 / 수정 2011-06-06 15:19:37
정리해고 철회하라”
“해고는 살인이다”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이곳에서 2003년 한 노동자가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그리고 2011년 또 다른 누군가가 이곳에 다시 올랐다. 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 두 사람은 여전히 똑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침 조회 시간에 나래비를 쭉 서 있으면 아저씨들 등짝에 하나같이 허연 소금꽃이 피어 있고, 그렇게 서 있는 그들이 소금꽃나무 같곤 했습니다. 그게 참 서러웠습니다. 내 뒤에 서 있는 누군가는 내 등짝에 피어난 소금꽃을 또 그렇게 보고 있었겠지요. 소금꽃을 피워내는 나무들, 황금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들, 그러나 그 나무들은 단 한 개의 황금도 차지할 수 없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아시겠지요?“ - <소금꽃나무> 중에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1982년 최초의 여성용접공으로 조선소에 입사해 절망의 시대를 이겨온 김진숙의 또 다른 이름은 ‘소금꽃나무’다.

그런 그가 1월 6일 영도조선소 수 천명의 소금꽃나무를 대신해 85호 크레인으로 올라갔다. 85호 크레인에서 겨우내 시린 추위가 가고, 크레인을 흔들던 영도 ‘똥바람’도 사라지고, 이제는 크레인 강철을 뜨겁게 내리쬐는 초여름 더위가 왔다. 그렇게 벌써 152일이 흘렀다

150여일째 고공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150여일째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한진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호황을 누리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한진중공업 조선부문 구조조정에 노조의 반발이 거세다. 지난 2003년 사측의 구조조정에 맞서 김주익(전 지회장) 열사가 목숨을 끊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내 85호 크레인.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2003년 김주익이 쓰러진 85호 크레인.. 김진숙이 다시 오른 이유?

김진숙 지도위원은 85호 크레인을 오르기 전 편지를 한 장 남겼다. ‘더 이상 눈물이 아니라, 한과 애끓는 슬픔이 아니라 이제 승리와 부활이 되어야 한다’, ‘85호 크레인 주위에서 맴돌고 있을 김주익의 영혼을 안고 반드시 살아 내려가겠다’. 김주익 전 지회장이 목숨을 끊었던 2003년과 2011년은 묘하게도 닮았다. 노사합의를 일방적으로 깨고 구조조정을 단행했던 2003년 당시 사측의 태도는 2011년 오늘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그렇게 희망퇴직자를 받고, 정리해고자 명단을 발표하고, 2007년 합의된 노사간 특별단체협약서는 한낱 휴짓조각이 됐다.

이에 맞서 노조는 천막을 쳤고,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그러자 회사는 영도조선소 본관 건물 앞에 용역을 배치하고 노조를 상대로 수십억의 손배소를 제기했다. 마치 2003년의 상황이 재현된 듯 소름끼치는 일이다. 결국, 이런 상황은 김주익의 죽음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던 김 지도위원의 심경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85호 크레인에 홀로 올라와 있다.

그러나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 129일 내내 김주익 지회장이 85호 크레인에 고립돼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면 김 지도위원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매일매일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전화만이 유일한 통로였던 당시와 달라진 현실이 150여 일간 크레인 농성에도 불구하고 김 지도위원을 숨통 트이게 하는 점이다. 그는 “고공농성 초기에만 해도 그동안 보던 책 제목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고립감이 컸는데 이젠 아니”라며 “컴퓨터도 잘 안 쓰던 내가 트위터를 매일 세상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말했다.

4일엔 7회 박종철인권상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소식도 전해들었다. 35미터 높이 크레인에서 가장 어려운 투쟁을 감당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격려와 연대의 상이 도착한 것이다. 박종철인권상심사위원회는 “전국 노동자와 민중들의 희망으로 우뚝 서 있다”며 그의 싸움이 혼자만의 투쟁이 아님을 분명히 밝혔다.

‘85호 크레인으로 가는 희망버스’.. 트위터로 확산되는 연대의 힘

11일엔 서울과 수원,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희망버스가 영도조선소로 달려온다. 가수, 배우와 영화감독, 교수, 미술가, 판화가, 촛불시민, 쌍용-기륭 해고노동자, 네티즌까지. 그중에는 김진숙이라는 이름을 이번에 처음들은 사람도 있고,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 모두가 김진숙의 싸움에 감동하고 있다. 김진숙의 싸움이 외롭지 않다고 응원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진숙 지도위원은 자신의 고공농성은 물론 “(희망버스 등이)장기파업으로 가면서 돌파구가 잘 보이지 않는 한진중공업 사태에 큰 힘이 되고 있다”며 기대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측이 정리해고를 철회하지 않는 한 절대 85호 크레인에서 내려가지 않겠다”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주익의 영혼을 안고 반드시 살아내려 오겠다던 김진숙 지도위원. 그는 그 약속을 지키려고 35미터 고공크레인에서 152일째 오늘을 견디고, 크레인 밖은 이 약속을 지켜주기 위해 ‘연대’를 꽃피운다.

김주익,박창수,곽재규 열사 추모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 추모공원에 서 있는 열사 추모비. 한진중공업 노조는 2005년 김주익, 박창수, 곽재규 열사를 추모하는 비를 이 곳에 세웠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다음은 <민중의소리>가 6일 김진숙 지도위원과 나눈 전화인터뷰 내용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7회 박종철인권상 수상자가 됐다. 소식을 전해 들었나?
“연락을 받았다. 지금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이 169일 차 파업을 하고 있는데 그 투쟁에 대한 격려 아니겠나.”

-인권상 수상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개인이 받는 게 아니라 한진 투쟁을 승리하라는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박종철 열사와는 한 시대를 같이 살았던 사람이다. 알고 보니 박종철 열사는 영도조선소 근처에 살았던 분이더라. 나도 대공분실에 다녀온 경험도 있고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하여튼 상을 주신다는데도 사실 마음이 무겁다. 빚진 게 있으니 이제 갚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8일 시상식이 진행되는데 현재 크레인 농성 중이다.
“시상식 당일은 대리수상을 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어떤 형식이 될지는 모르지만 희망버스(11일) 행사 때 인권상 심사위원인 한홍구 교수나 박래군 이사도 오시겠다고 하니 상을 전달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정리해고 뒤 176억 배당금 가져간 한진 경영진, 배은망덕”

-고공농성이 여론화되고 있는데 사측에 하고 싶은 말은.
“정리해고를 발표한 다음 날 174억에 배당금을 챙겨간 경영진들이다. 그런 그들이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할 수밖에 없었다면 도대체 경영진은 무슨 책임을 졌는지 묻고 싶다. 한진 경영진은 이 공장을 영도에서 72년을 유지해온 부산시민, 한진 노동자들에 대해 일말의 가책도 없다. 명백한 배은망덕이다.

사측이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이 싸움은 몇 년이고 갈 수밖에 없다. 자기들은 수주를 못 받아서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데 언제까지 수주를 계속 안 받을 건가. 사측이 냉정하고 현명하게 봤으면 좋겠다.“

-크레인 농성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어떻게 지내나?
“(크레인이) 100% 쇠로 만들어진 공간이라 어제부터 매우 덥다. 더위와 싸워야 하지만 추위도 이겼는데 더위도 못 이기겠나. 누워 잘 공간은 스탠드 에어컨보다 약간 큰 편이다. 발 편하게 누울 만큼 되진 않지만 나쁘지 않다. 식사는 아래에서 조합원 가족들과 동지들이 올려준다.

-11일 전국각지에서 희망버스가 영도조선소에 온다
“처음에는 전국노동자대회 조직하듯 일상적으로 집회하는 줄 알았다. 우리는 이런 게 이미 박혀있는 사람 아닌가(웃음). 일이 진행되는 걸 보니 너무 놀란다. 저를 잘 모르는 분들, 조직되지 않은 분까지 온다니 이분들이 이틀의 시간을 내고 그 뻘줌함까지 견딜 거라 생각하니 놀랍고 큰 힘이 되고 있다. 우리 조합원들도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돌파구는 별로 없고, 사측은 계속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뒤에서 누군가가 받쳐준다니 기다려지고 설렌다.”

-트위터를 통해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고공농성 과정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수단은 전화와 트위터밖에 없다. 그동안 기계문명에 익숙해가는데 더딘 감이 있고 거부감도 있었다. 사실 컴퓨터도 메일만 사용하고 잘 안 쓴다. 그리고 이런 거에 빠져들다 보면 계속 진화하고 진화하니 한도 끝도 없이 될까 우려도 있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지난해 초 열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집회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지난해 초 열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집회에서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김진숙, 51세에 만난 트위터로 세상과 소통하다

-어떻게 트위터를 하게 됐나?
“85호 크레인에 올라보니 별생각이 다 들었다. 신문과 책을 보고 지냈지만, 점점 세상하고 고립되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심지어 예전에 읽었던 책 제목도 기억이 안 났다. 징역을 살 때처럼 점점 한계도 다가왔다. 그때 누가 트위터를 알려줬다. 아무 관심도 없었던 내가 독학으로 배웠다. 그런데 (시작하자마자) 누가 트위터로 말을 건네더라. 너무 신기했었다. 밥은 잘 먹었느냐, 잘 지내시느냐 하고 글이 올라오면 이렇게 저렇게 지냈다며 답을 해줬다. 그 과정에서 김여진 씨 등과도 연결됐다.

그렇게 전국의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나니 많은 분을 만나게 됐다. 그때부터 (고립감 등)갈증이 사라졌다. 일상적으로 나누지 못하는 대화를 트위터가 대신하게 된 것이다. 매일 글을 쓰다 보니 잃어버렸던 책이름도 생각나고, 까먹은 이름도 떠오른다. 트위터가 사실 고맙다.

-고공농성은 언제까지 할 예정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버티는 게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회사가 정리해고를 철회할 때까지 절대 내려가지 않겠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김진숙 지도위원이 150여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민중의소리 김보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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