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년전 [봉명학교] 다시 문을 열다

       - 철원독립운동의 맥을 이어서


한해가 시작 되었으나 부패한 정부에 의한 국민을 기만하는 수위는 높아만 간다. 까도까도 양파라 했는데 한 개 두 개도 아니고 양파 자루째 까야 할 만큼 끝도 없어 보인다. 100여년전에도 부패한 위정자들 때문에 외세에 국권을 찬탈 당하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었다. 그러나 당시에 민초들은 호락호락 이 땅을 내어주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의 땅을 지키고자 의병으로 일어섰다. 이러한 도도한 흐름에 철원지역이 주요한 역할을 했었음을 109년만에 다시 문을 열은 봉명학교에서 배운다.

 

철원의 봉명학교는 독립운동의 결사체인 강원(철원)애국단 단장인 소몽 이봉하선생(대한 애족장 표창)이 한일병탄 전인 혼란한 시기에도 불구하고 1908년 철원읍 율길리(용담)에 세웠던 사립학교로 3.1 대한독립만세운동 전까지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지역을 위한 후진양성에 힘을 쏟았고 나라 잃은 백성에게 민족의식을 함양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에 철원독립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봉명학교의 정신을 오늘에 이어받는 의미로 철원독립운동 배움터를 봉명학교로 부르기로 했다.

 

철원의 독립운동의 역사를 찾아보는 2017년 겨울 아카데미[봉명학교]가 지난 117() 철원농협 대회의실에서 4강중 첫번째인 철원독립운동사의 흐름에 대한 이해라는 주제로 이우형(현강역사문화연구소장)의 강연이 열렸다. 이 소장은 봉명학교의 자는 봉황의 큰 빛처럼 크고 중요한 일을 하라는 뜻이라고 설명하며 철원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정미의병 무장 투쟁

1907~1911년의 정미의병은 군대 해산 명령을 받아 드릴 수 없었던 신식 군대들은 해산을 거부하고 전국 각지에서 무장 투쟁으로 의병 활동을 하였다. 허위, 연기우, 왕희종, 김진묵, 조인환, 이홍응 등이 대부대를 조직하여 봉기를 하였다. 이들은 임진강 유역을 장악하였으며 철원출신의 김규식, 안상근, 유학근, 최병학, 이여정, 이근배, 이기원, 강천필, 조병식, 박성노 등의 의병장이 연천 포천 철원에 둘러싸인 보개산을 근거지로 다양한 무장투쟁을 공동으로 전개 하였다. 의병은 적으면 700여명 많을 때는 3000여명의 의병군이 전투에 나섰으며 침략자와 무려 100여회의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다. 신식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 맞선 의병들의 피해는 컸으며 일본군은 보복으로 근거지로 보이는 심원사를 불 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국내의 불안한 전국으로 일본은 병탄을 계획대로 진행하지 못하고 철원 보개산 의병들의 활동이 수그러든 1910에야 한일병탄이 비로소 될 수 있었을만큼 그 활동 위력은 대단했었다고 한다.

 

3.1독립만세운동

그 후 191931일 독립만세운동도 310일 강원도에서 제일먼저 일어났으며 갈말 김화 등으로 확대되면서 힘차게 진행이 되었다. 현재 서울의 파고다(탑골)공원에 가면 전국의 8도 의 중요 독립운동사를 대형 부조로 만든 조형물이 있는데 강원도를 대표해서 철원의 독립운동이 형상화 되어있을 만큼 철원의 독립운동이 굳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한독립애국단사건과 그 후의 항일 투쟁

대한독립애국단은 1919년 서울에서 결성된 비밀경사조직으로 대한 애국단의 중심 세력 이였던 강원(철원)애국단의 활동과정을 소개하였다. 철원애국단은 1919년 여름에 활동을 시작했는데 만세운동 관련자 분들이 석방되고 논의 되면서 급물살을 타듯 신속이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아 그 전부터 상당히 준비 된 세력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서울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강원애국단으로 편재를 확대하며 강원전역으로 활동을 넓혀 갔다. 강원애국단은 임시정부와의 연통, 국내독립운동단체의 결속, 2의 만세운동, 자금모집등 비밀운동을 확대해 나갔다. 그러나 1920년초에 조직이 발각되어 45명이 구속되는데 철원 사람들이 도단장 이봉하, 박연서,강대려, 김철회등 15명이 되었고 그중 조종대 선생은 옥고로 사망을 한다.

 

이후에도 우리 지역 에서는 민족해방, 노예교육철폐, 동맹휴업의 철원격문사건, 비밀결사 단체인 철원사회주의자 협의회 사건, 한국독립당사건, 동송면 장흥리 소재 불이농장등 소작쟁의 사건 다수 발생, 철원읍소재 종연방직제사공장의 동맹휴업사건, 김화읍 감리교회 신도들의 대동아전쟁반대, 신사참배반대, 지원병제도 반대 선동 검거사건등 꾸준하고 다양한 독립운동이 이어지고 있음을 소개해 주었다.

 

철원은 구한말 민족주의자 및 개화 신지식인 그리고 천도교와 기독교의 영향과 경원선 개통으로 신문물이 활발했던 곳으로 자각 의식이 높고 외세에 대한 저항의식이 앞섰던 곳으로 자긍심이 높은 곳이다. 끝으로 폭 넓은 시민교육의 필요성과 역사 현장의 기념물 사업등을 독립과 평화통일의 완성을 위하여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로 뜨거운 강연을 끝맺었다

봉명 학교는 매주 화요일 4시에 4회까지 강연을 이어가며 2강은 문학속의 철원 독립운동을 찾아보는 시간을 갔는다.

  철원신문 [2017-02-08 오전 10:42:00] 철원독립운동기념사업회 사무국장 김용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