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 있는 품앗이, 불만도 없죠”
못자리 1판당 300원…일도 하고 돈도 벌고
철원 다우리지킴이, 15년째 못자리 공동작업
2012년 04월 23일 (월) 13:52:10 원재정 기자 jjsenal@naver.com

민통선 안 철원평야 한복판에 ‘실속 있는’ 품앗이로 15년째 못자리 공동작업을 하는 농민들이 있다. 벼농사 하는 철원지역 12 농가들로 구성된 ‘다우리지킴이’가 그 주인공.

17일 오전 9시경, 검문을 받고 들어선 철원평야는 활기를 띠고 있었다. 멀리 혹은 가까이에서 농작업을 하는 분주한 농민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산과 들도 연한 초록색으로 물이 올라 긴 겨울을 떨치고 있었다.

차로 15분. 잘 지어진 규격하우스가 햇살을 되비치고 있는 현장에 도착했다. 다우리지킴이(다우리) 회원들의 못자리 작업이 한창이다. 이들은 새벽 6시부터 일을 시작해 11시 정도면 마무리 짓는 게 보통이다. 오늘 끝내야 할 작업량은 모판 4천장.

   
임순교 회장.
“15년 동안 손발을 맞췄기 때문에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자기 몫의 일은 기막히게 들어맞고 있다”고 다우리 임교순 회장이 설명했다. 오늘 작업장도 마침 임 회장 논이다.

못자리 작업은 크게 두 팀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기계팀과 일반팀으로 나누는데, 일 잘하는 사람들이 기계팀에 있지 뭐.”

말을 마치자마자 일명 ‘기계팀’원들은 까르르 웃는다. 저 쪽 논 한가운데서 모판을 나르는 ‘일반팀’들한테는 비밀로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품앗이로 협동심 높이고,
가욋돈도 벌고

오전 햇살도 한낮처럼 내리꽂고, 이른 새벽부터 시작한 작업이라 피곤할 법도 하지만, 시종일관 화기애애하다.

새벽에 시작된 작업은 9시 30분경에 참을 먹으면서 쉬어 간다. 회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하우스 안에서 고기를 굽고 막걸리도 한 순배 돌리면서 출출한 속을 달랬다.

다우리의 품앗이는 특별사항이 있다. 일반적인 품앗이는 “서로 돕자”는 취지로 돌아가며 못자리를 하는 걸로 끝나지만, 다우리는 돈이 오간다. 전통적인 품앗이의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고 너무 이해타산적 아니냐는 오해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회원들은 이게 장수모임의 비결이라고 입을 모은다.

임 회장은 “요즘 농사일은 규모가 천차만별이다. 아무리 순수한 마음으로 공동작업을 한다고 해도, 모판 5천 장 하는 집과 2천 장 하는 집에 대한 노동강도가 같을 순 없다”며 “그래서 우리는 모판당 작업비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모 1판당 회원은 300원, 비회원은 500원으로 책정해 일이 끝나면 계산을 한다는 것이다. 이 돈은 작업에 참여한 회원들의 일당으로 나뉘고, 트랙터 등 농기계 비용을 제하고 일부분은 적립을 했다가 파종기를 고치거나 혹은 기계를 업그레이드 하는 데 쓴다. 또 적립도 한다. 이 때문에 내 농사는 적고 남의 집 농사는 많을 때 생기는 부담과 불만도 원천 차단할 수 있다.

철원지역은 보통 4월 2일부터 20일까지 못자리 작업이 진행된다. 올해 다우리 회원들은 18일이면 작업을 모두 끝내고 품앗이 정산을 받게 된다.

   
민통선 안 철원평야 한복판에 '실속 있는' 품앗이로 15년 째 못자리 공동작업을 하고 있는  '다우리지킴이' 회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매년 봄마다 9일 정도 품앗이하고 회원 한 명당 48만7천원 정도 가욋돈이 생긴다. 이 원칙은 모임이 결성된 1년차부터 적용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임 회장은 “품앗이라면서 돈을 주고 받는 것을 각박하다고 해석하지 않는다. 오히려 활력소로 작용해 긴 시간 손발을 맞춰 짜임새 있게 일을 할 수 있었다. 여느 논처럼 품을 사서 일하면 사실 일이 거칠어진다. 아는 사람들끼리 믿고 일하면 일에 차질도 없고, 모 상태도 건실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실속품앗이 인근 지역에 소문
다우리 총무 김명근 씨도 “예상치 않게 모가 망가져 낭패를 볼 때도, 회원들한테 얘기하면 금방 원하는 만큼의 모를 구할 수 있다. 가장이 사고를 입더라도, 회원들이 우르르 작업을 해주면, 시기를 놓치지 않고 한해 농사를 지을 수 있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는 파종기만 있던 기계를 복토까지 하는 원스톱 작업이 가능하게 업그레이드 시킨 ‘기계박사’이기도 하다.

손발이 척척 맞는 다우리 품앗이는 인근에도 소문이 나서, 위탁작업도 하고 있다. 올해는 4집 9천장 정도를 했다. 비회원 작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450만원. 회원들의 작업비를 정산하고 현재 남은 적립금은 670여 만원이 있다.

작업 때 임시로 모인 일꾼이 아닌, 내 집 농사짓듯 품앗이를 하는 다우리 회원들은 인근에서 인기가 높다. 15년 세월동안 따로 일정을 맞추지 않아도 자연스레 못자리 일하는 순서가 정해질 만큼 나름의 법칙이 쌓인 다우리 회원들. 그들의 ‘실속 품앗이’는 내년에도 계속된다. <원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