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발] 검찰 고위층들의 독특한 정신세계 / 김이택
등록 : 20111222 19:25 | 수정 : 20111223 17:22

 

“낯뜨거운  검사행위…” 동문회보에 못 실린 이유

»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유리창에 검찰 직원들이 비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시대착오적 상고이유서가 나오고 동문회보 글까지 검열하는 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정국이 모든 이슈를 뒤덮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이 문제만큼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한 검사가 민청학련 사건 재심 공판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데 반발해 상고이유서를 대법원에 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가관이다.

“대통령 긴급조치는 비교적 단기간에 걸쳐 시행되었다가 … 즉시 해제된 점, 당시 대통령은 위기상황 극복을 위해 불가피하게 기본권을 제한한다고 인식하면서 긴급조치를 발령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 긴급조치가 유신헌법에 의하더라도 위헌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여기까지는 당시 시대상황을 강조하다 논리가 비약했을 수도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피고인 내지는 민청학련 관련자들에 대한 가혹행위는 … 사법경찰관 단계의 조사 내지는 검찰관 단계에서의 조사 과정에서 이뤄졌지 공판 과정에서도 이뤄졌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자료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설명까지 덧붙였다.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이 수사기관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내용의 문건은 존재하지만 … 피고인의 법정진술 내용을 듣고 수사관들이 피고인을 끌고 중앙정보부로 가 그 진술 내용을 번복하라고 시켰다거나 그 공판기일 전 피고인에 대해 가혹행위를 하여 조서를 부인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취지의 조사내용이 전혀 없”으므로 당시의 유죄판결이 잘못된 게 아니라고 했다.

30여년 전 유신시대 검사들이나 했을 법한 주장이다.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들에 대한 역사적 단죄와 함께 재심 법정에서 무죄에 이은 국가의 배상 판결까지 줄줄이 내려지는 상황에서 이 무슨 황당한 주장인가. 어찌된 영문인지 알고 싶어 상고이유서를 쓴 서울고검 검사에게 전화했더니 “할 말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동안 검찰은 유사 사건에서 항소를 포기해오다 한상대 전 서울중앙지검장 때 처음 항소했다고 한다. 현직 검찰총장이니 그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볼 수밖에 없겠다. 독재정권에 부역해온 과거사를 한번도 사과하지 않은 검찰답게 과거의 치부까지도 절대 자기 입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는 오만함이 느껴진다.

최근 동문회보의 청탁을 받고 짧은 글을 하나 썼다. 검찰 비리가 터져나오는 현실을 언급하며 얼마 전 읽은 책 얘기를 일부 소개했다. “스폰서가 마련한 룸살롱 술자리에서, 그야말로 중인환시리에 돈을 걸고 접대부와 낯뜨거운 성행위를 벌인 사람이 당시 현직 검사였다니 놀랄 일이었다. 아는 검사에게 물었더니 책 내용을 믿기 어렵고 설사 사실이라도 요즘엔 그런 스폰서 문화 자체가 없다고 했다. 믿고 싶었다. 그래서 얼마 뒤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봤다. 그런데 아무도 책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이유로 민형사상의 문제제기를 해온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