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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성이 존재하는 사회
날짜  2010.12.6 11:20:42 조회  93
작성자   임두혁


                ㅡ20년 농민을 돌아본 과거와 현재ㅡ


돌이켜 보면 참 어려운 시절 이었습니다.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은 세상을 뜨신 농촌 진흥청에 차동열 박사님이 균이과.지금의 응용미생물과에 과장으로 계실때 처음으로 버섯을 배우겠다고 몇개월을 보수도 없이 실습생으로 있었습니다

그때 유행하던 버섯이 주로 볏짚 균상느타리 였습니다.병버섯 재배는 미래의 가치산업이란 말을 하였지만 너무 시설이 없어서 불가능 하다고 믿었으니까요.혼합기가 없어서 삽으로 배지를 혼합 하였고,균긁기가 없어서 시약스픈으로 균을 긁었던 시절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수원에 이강화씨가 운영하던 독농가를 견학하면 수백명씩 떼를 지어 다니며 그 화려한 언변과 호남형의 농민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고 ,시작 단계라 한가지 병징과 재배 상황에 대하여 밤새워가며 토론과 논쟁을 벌이던 전국의 농민들이 생각 납니다.

지금 쯤 그 많던 재배농가들은 다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농업을 이끌어 가고 있을까?. 지금도 궁금합니다.그중 일부는 병버섯 재배에서 규모화에 성공하고,또는 뒤 쳐진 농가는 무리한 투자에 가산을 탕진하기도 하고,또는 아직도 균상느타리에 매력을 버리지 못하고 고집을 피우며 하시고 계신 분들도 계시고,이미 다른 농업에 전념하고 계시는 분들도 계시고,이미 세월이 흘러 딴 세상 사람이 된 분들도 계시고요.

이렇게 돌이켜 보면 20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문득 이런 구절이 떠오릅니다.

"세상의 모든것은 변한다.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저 들판에 푸르른 소나무일 뿐이다".

유독 변하지 않는것이 있다면,

규모화에 비례해서 아직도 농민들이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다는것 입니다.그 시절에도 작목반은 존재 했지만 사람과 물질과의 관계에서 진일보 하지 못하고, 아마 시대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변화를 겪어야 했습니다.

개인과 집단의 변화.물질문명의 발전에 발맞춰 무의식적으로 나가면서 문득 지나온 시간을 돌이켜 보면 어느덧 나의 의식보다는 물질세계에 맞춰서 따라왔구나 하고 느낄때가 많습니다.즉 살면서 고민하는것중에 하나가 바로 이 사회에 "이성은 존재 하는가" 입니다.

한 예를 들어 요즘 서울시의회가 내놓은 친환경 무상급식조례안을 오세훈 서울시장과 줄다리기 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우울함 때문입니다.서울 시장의 논리는 대중과 야합한 포퓰리즘에 빠진 의회의 결정에 불필요한 예산 집행을 할수없다는 논리를 가지고 삳바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과거 경기도 교육감 김상곤 의 끈질긴 고집에 인하여 오늘날 여야를 막론하고 너도 나도 국민들의 복지를 주장하는 정치 권력의 최대 이슈로 떠오른 계기가 되었습니다.

말이 나온김에 잠깐 더 들어가보면 그 싸움의 본질은 이렇습니다.
보편적 복지의 모습이란 돈이 많고 적음을 떠나서 모든 청소년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눈치밥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인정한 떳떳한 복지의 혜택을 누려라,라는 어른들의 새로운 약속과 제도를 만들자는 것입니다.일종의 사회적 합의죠.

여당이 주장하는것은 형편이 넉넉한 집안의 자식들에게 왜 공짜밥을 먹이냐는 것이지요.
둘다 맞는 얘기긴 합니다.바로 차별적 복지입니다.

사실 제가 더 놀란것은 그 속에 숨은 속뜻,어려운 농업 환경에 대한 배려 였습니다.

아~~, 교육감이 교육문제와 농업문제를 동시에 풀어가고 있구나 였습니다.식량 자급율이 25%밖에 안되는 국내 농업의 시장 환경을 보아도 장차 국내 먹거리의 불안정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제도적으로 막아보자는 숨은 속 뜻이 있었던 겁니다.

앞으로도 복지 하나를 놓고서도 성장과 분배에 대한 논란은 계속적으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것이라 봅니다.기득권자들은 늘 이분법적으로 성장과 분배는 따로간다고 말 합니다만,사실은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같이 갈수있는 지혜를 짜내야 합니다.
그래서 북유럽식(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 복지국가를 모델로 우리는 좀더 많은 고민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많은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 몸속에 교육받아져 오고 습관되어온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의 논리를 씻어내야합니다.인간이 모인 집단이 마녀사냥을 하듯이 한가지 방법과 색깔을 강요하는 사회가 아니라,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다원화된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약하고 힘없는 사람도 이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서 당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집단적 이성을 되 찾아야 합니다. 

일단은 다시 버섯 세계로 돌아와서,이렇게 물질세계를 통한 규모화와 인간의 의식구조에 많은 괴리가 생기면서 버섯 농민이 모인 소통의 공간은 오히려 퇴보 하였다는 말씀을 드리면서,저번에 어느분이 올리신 버섯 가격의 하락과 소비자가격과의 차이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접하면서 사실 제가 지금 겪고있는 고민 이라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과거 사회의 큰 흐름중 하나가 바로 집단속에서의 리더쉽의 큰 잣대가 인간이 모인 조직을 관리하고 끌고나가는 것이었다면, 요즘의 흐름은 사람들과의 융화와 집단속에서의 의사결정을 잘하여 목표에 맞는 결과를 도출하는 소통과 통합형 리더쉽 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커뮤니케이션 중심의 세상속에 우리는 살고있는것입니다.따라서 이성이 존재하지않는 조직과 집단은 인간 사회를 파괴하기도 후퇴하기도 합니다.

문제를 느끼는것도 우리 농민이요,해결하는 주인도 우리 농민이라는것입니다.

단결된 생산자의 힘만이 해결해 주겠지요. 보이지 않는 손 을 너무 믿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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