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쌀 직불금 인상’ 국회요구 ‘묵살’···국감 파행

'농업 공약 1호' 쌀 고정직불금 100만원 인상도 후퇴

최지현 기자 cjh@vop.co.kr
입력 2013-10-29 18:01:48l수정 2013-10-29 22:42:26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쌀 가격 더 올릴 수 없다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식품부 종합 국정감사에서 쌀 가격을 17만4083원에서 올릴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양지웅 기자



박근혜 정부가 쌀 직불금 인상을 주장하는 농민단체와 국회의 요구를 사실상 묵살하면서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쌀 직불금 인상 등으로 농가 소득 안정에 기여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파기 논란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29일 농림축산식품부를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쌀 직불금 인상 문제를 놓고 정부 대책을 추궁했다. 앞서 지난 11일 농림위 전체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은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에게 기존 80kg당 쌀 목표가격을 17만83원에서 17만4천83원으로 올리기로 한 정부의 안을 재검토해 현실적인 인상안을 농림부와 기획재정부간 정부 합의를 거쳐 2주 안에 보고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농식품부가 내놓은 답은 사실상 '인상 불가' 방침이었다. 농식품부는 29일 '쌀 목표가격 정부 제출안 설명자료'에서 "정부가 이미 제출한 목표가격 17만4천83원(80Kg)은 산지 쌀값 최고 수준인 17만5천827원과 비슷하다"며 "목표가격을 시장가격보다 높은 수준으로 대폭 인상하는 것은 쌀값이 급락할 때 농가경영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변동직불제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쌀 변동직불제는 목표가격 아래로 산지 쌀값이 내려가면 그 차액의 85%를 보전해주는 것으로, 국회 동의를 거쳐 5년 단위로 결정된다.

이에 농림위 여야 의원 모두 반발하며 이동필 장관을 강하게 질타했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쌀 목표가격이 인상된 현실적인 대안을 가져오지 않는 한 국감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며 퇴장해 국감이 중지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민주당 김영록 의원과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 등 농림위 야당 위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농림부가 내놓은 싹 목표가격 인상안에 대해 "2005년부터 8년간 한 번도 오르지 않고 묶여 있던 현행가격에 비해 겨우 4천원 인상된 것"이라며 "지난 8년간 물가인상율 26.8%와 생산비증가율 21.2%를 감안한다면, 현행 쌀가격은 17만원선이 아니라 최소한 30만원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식품부가 '미국, 일본의 쌀 목표가격은 생산비 이하' 운운하며 겨우 4천원 이상된 쌀 목표가격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것은 농업, 농촌, 농업인의 기관임을 포기한 것"이라며 이 장관의 사퇴도 촉구했다.

농민단체들 역시 정부의 방침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날 국감을 현장에서 지켜보던 농민단체 관계자 20여명은 "장관 뭐 하는 거야"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이들은 국감장 앞에서 즉석 기자회견을 열고 "현재 쌀 목표가격인 17만4천83원은 쌀 시중가보다 현저히 낮은 금액인데 8년만에 쌀 목표가격을 인상하면서 달랑 4천원만 올린다는 게 말이 되냐"면서 "쌀 농사를 짓지 말라는 것과 똑같다. 그렇게 되면 국민들은 결국 수입쌀을 먹고 살 수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상정 음성농민회회장은 "농민들이 요구하는 23만원으로 쌀 목표가격이 인상되지 않으면 오는 11월 22일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며 "성난 농민들은 이 장관 퇴진이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퇴진을 요구할 지도 모를 일"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박근혜 정부는 쌀 고정직불금 인상 공약도 파기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작년 대선후보 시절 "쌀 직불금을 확대해서 농가 소득 안정에 기여하겠다"며 "고정직불금을 현재 헥타르(㏊)당 70만원에서 100만원 이상으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쌀 재배 농가에는 변동직불금 외에도 쌀값 변동 여부와 관계없이 면적당 일정금액을 지급하는 고정직불금이 지급되고 있는데, 이 고정직불금 액수를 올려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지난 5월 정부는 쌀 고정직불금을 기존 70만원에서 80만원으로 인상한다고 밝혀 공약 후퇴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 연맹과 한국농업경영인 경상남도연합회 등 경남 농민단체들은 29일 경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공약은 박근혜 후보의 대선 농업 공약 1호이지만 2014년 예산에 반영조차 하지 않고 농민을 기만하고 있다"면서 "약속과 신뢰가 무너지면 권력의 존재 이유조차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성토했다.

이와 관련 농림부는 지난 17일 국정감사에서 "공약 이행을 위해 쌀 직불금 지급단가 인상을 국정과제로 채택해, 올해 ha당 80만원에서 2017년 100만원으로 단계적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며 "내년도 예산안에 쌀직불금 단가를 올해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한다고 해서 대선공약 파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농림부 국정감사 참석한 김선동 의원

김선동 통합진보당 의원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식품부 종합 국정감사에서 의사진행발언을 하며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쌀 목표가격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의원들의 질문 듣는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식품부 종합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동필 장관에게 항의하는 농민들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농민들이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식품부 종합 국정감사에서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쌀 가격을 17만4083원에서 올릴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자 방청석에서 일어나 항의하고 있다.ⓒ양지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