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욕 먹은 강기갑... 민주당, 안 찔립니까
한-EU FTA 비준안 국회 본회의 상정... 민주당 앞에 놓인 리트머스 시험지
11.05.01 20:37 ㅣ최종 업데이트 11.05.01 21:24 남희섭 (news)
  
한-EU FTA 비준동의안 강행처리에 반발해 야당의원들이 집단퇴장한 가운데,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남경필 외통위 위원장이 한-EU FTA 비준동의안을 '찬성 17, 반대 2, 기권 6'으로 가결을 선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유성호
한-EU FTA

가슴이 먹먹하다. 야권 연대로 일군 재보궐 선거의 성과가 일거에 날아간 느낌이다. 민주당은 선거의 승리감에 너무 취했던 걸까? 아니면 애초부터 손에 피를 묻힐 생각이 없었던 걸까? 한나라당의 표결 시도에 민주당 의원들은 순순히 퇴장해 버렸다. 그나마 7명뿐인 상임위 소속 의원들도 다 참석하지 않았다. 못 막은 게 아니라, 안 막았다는 비판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유다.

 

강기갑 의원의 고군분투만 돋보였다. 관련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으로 통외통위 회의에서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국회법에 따른 당연한 권한임에도 불구하고, 보수 언론들은 부정적인 이미지만 부각하려고 "강기갑, 또 나타났다"는 기사를 내보낸다. 이러니 국회에서 정치공학에 따라 조약을 처리해도 문제삼지 않고, 오히려 제대로 검토하자고 주장하는 의원이 욕을 먹는 적반하장이 당연시되었다.

 

한-EU FTA에 무려 200개가 넘는 오류가 드러난 것도 이처럼 국회가 조약을 엉터리로 심사하면서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국회는 번역 오류에 대해 행정부를 몰아세우지만, 조약심사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국회도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

 

논의 충분했다는 남경필 위원장, 내용은 아십니까

 

지난 4월 28일 통외통위 회의에서 남경필 위원장은 그 동안 충분히 논의를 했다며 표결 처리를 강행했다. 이미 3차례나 공청회를 했고 2번의 간담회를 가졌다는 것이 이유다. 필자는 이 5번의 논의 과정에 2번 참석을 했다. 작년 12월 공청회와 이달 13일에 있었던 간담회였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 과정은 수박 겉핥기식 요식 행위였다. 공청회는 여러 주제들을 묶어 반나절만에 끝냈고, 필자가 진술했던 지적재산권 분야는 내용을 알아듣는 의원이 없어 보였다. 시간이 짧아 10분 발제 후 피상적인 질문만 몇 개 있었을 뿐이었다.

 

이번 달에 있었던 간담회는 수십 개의 쟁점을 제대로 짚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필자는 준비했던 내용을 반도 얘기하지 못했고, 발언 시간이 길다며 빨리 끝내 달라는 위원장의 재촉에 계속 시달려야 했다. 여당 의원들은 어떤 문제를 지적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지난 번 소위원회 표결 과정에서 기권을 해 야권의 찬사를 받았던 홍정욱 의원은 간담회 시작 때 잠시 앉아 있다가 배포된 협정문을 읽지도 않고는 나간 다음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간담회를 위해 필자가 준비했던 사안은 제목만 나열해도 이 글의 분량을 걱정할 정도다.

 

<경제적 효과 및 협상의 균형> 경제적 효과 / 관세철폐로 인한 세수 감소 - 10년간 연평균 1.7조원 / 관세철폐 합의에 대한 정부의 거짓 홍보, <동시다발 FTA, 거대경제권과의 FTA의 필요성> 쇄국이냐 개방이냐: 2월말 통계, 하루 수출 20.5억불, 수입 19.5억불 / 준비되지 않은 기회는 위기에 불과: 인증수출자 제도 등 보완 대책 / 동시다발 속도전이 부른 오류: 각기 다른 원산지 결정기준, <국내 법령 제개정과 국회 입법권 제약> 이행법령과 국내법의 제개정, <상품 제조업 분야> 과장된 장밋빛 전망 / 고용없는 성장, <보건의료 분야> 의약품 및 의료비 인상 / 민간보험상품 규제권한 박탈 / 제주도 및 경제자유구역내 영리병원 허용고착화 / 개인질병정보의 해외 유출, <지적재산권 분야> 공연보상청구권 / 지재권 침해에 대한 국경조치 확대 / 지재권의 과잉보호 문제 / 지재권 보호에서 상호주의 상실 / EU의 지리적 표시를 과잉 보호 / 지리적 표시 누락, <삼권 분립과 헌법 질서> 통상독재의 구조화 / 이른바 7월 1일 발효설 / 위원회와 작업반을 통한 상시적인 통상독재 / 조약절차법 제정의 필요성, <법적 효과> 잠정발효와 자기집행력의 부인.

 

굳이 이걸 나열하는 이유는 한-EU FTA는 그만큼 따져볼 쟁점이 많고, 따라서 그제 통외통위 통과는 졸속 처리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가장 큰 쟁점이었던 유통법·상생법의 이해당사자인 중소상인들은 간담회에 초대받지도 못했다. 노동계 목소리 역시 배제되었다. 정부가 내놓은 추가 대책도 폐업하는 축산 농가의 양도세를 감면해 준다는 것인데, 이건 축산 농가의 폐업을 유도하는 것이지 피해 대책으로 보기 어렵다.

 

이번 한-EU FTA에서 유보조항을 두지 않아 학교급식에서 우리 농산물을 우선 구매할 수 없게 된 지방자치단체는 이번 달 들어서야 한-EU FTA에 그런 내용이 있다는 걸 알았다. 유럽은 자국 농산물을 우선 구매할 수 있으나 한국은 그렇게 못하는, 상식에 반하는 협상 결과에 대해 통외통위는 최소한 무상급식을 추진하던 교육감들의 의견은 들어야 하지 않는가?

 

FTA로 관세가 철폐되어 혜택을 볼 것이라는 중소기업들은 10%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관세 혜택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원산지 증명을 잘못하여 특혜관세를 받기는커녕 물품금액의 3배에 달하는 벌금을 물게 될지도 모르는 현실에서 7월 1일 잠정발효만 앞세우는 속도전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입법기관이라는 국회는 한-EU FTA로 인해 국내법이 어떻게 개정되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미래의 입법권한이 제한되는 내용은 법 개정 사항이 아니라고까지 하면서 일단 상임위 통과를 서둘렀다. 국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관련 상임위의 의견제출 기회는 고려대상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본회의 상정 앞둔 한- EU FTA, 민주당의 선택은?

 

  
한-EU FTA 비준동의안을 놓고 여야가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관하던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FTA 후속대책 등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남경필 외통위 위원장에게 강행처리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한-EU FTA

견제받지 않는 권력, 그것이 바로 독재다. 이번 한-EU FTA 처리과정에서 국회는 통상 독재라는 새로운 권력의 출현에 산파 역할을 한 셈이다. 통상 독재를 구조화·제도화하는 FTA의 문제점은 SSM 규제법(유통법과 상생법) 처리 과정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 국회는 수년간의 논의를 거쳐 지난 해 유통법, 상생법 개정에 여야 합의를 이루었다.

 

그런데 국회 논의 과정에서 통상교섭본부장은 한-EU FTA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며 어깃장을 놓았다. FTA 협상에서 상대방과 합의한 사항과 배치된다는 것인데, 원래 통상교섭본부는 이러라고 만든 조직이 아니다. 국회에서 합의한 법률이 있으면 그 내용을 반영하도록 외국과 교섭하라고 만든 조직이 통상교섭본부다. FTA 상대국의 입장을 대변하여 거꾸로 국회와 교섭하라고 만든 조직이 아니라는 말이다.

 

앞으로 한-EU FTA가 발효되면 협정의 이행을 감독한다는 명목으로 통상교섭본부는 국회 위에 군림할 수 있다. 실제로 협정문에는 통상교섭본부장이 공동위원장을 맡는 무역위원회에 백지위임장을 주는 조항이 있다.

 

무역위원회는 협정에 규정된 경우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도 결정을 내릴 권한을 가지고(15.4조 1항), 이 결정은 당사국을 구속한다(15.4조 2항). 유럽연합은 한-EU FTA를 유럽연합의 법령보다 하위법으로 취급하는 것과 달리, 우리 헌법은 FTA와 같은 조약을 국내법과 같이 취급하기 때문에 이 조항으로 인해 통상 독재는 한국에서 법률로 보장된다.

 

이제 한-EU FTA는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외통위 처리 과정에서 방관자로 머물렀던 민주당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통과 처리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한-EU FTA는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정체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인 셈이다. 손학규 대표가 주장하는 민주개혁진영의 통합이나 박지원 대표가 말하는 야권연대는 이번 선거 직전에 합의했던 야4당 정책연합 합의문을 민주당이 얼마나 충실하게 이행하느냐에 달렸다.

덧붙이는 글 | 남희섭 (한-미·한-EU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정책위원장/ 변리사)

ⓒ 2011 Ohmy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