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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조치 판결 관련 설명회를 다녀와서>

 

글 : 과거사청산위원회 및 상담 변론팀 소속 인턴 김주미
사진 : 국제연대위원회 및 출판 홍보팀 소속 인턴 박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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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1월, 국가질서를 유지한다는 이름 아래 대한민국에는 무소불위의 특별조치가 취해집니다. 그리고 그 해 봄, 읍내에 가던 오종상 씨는 버스 옆자리에 앉은 여고생에게 정부를 향한 푸념을 늘어놓았다는 이유로 중앙정보부에 강제 연행됩니다. 시골의 한 평범한 농사꾼이 국가에 반하는 범죄자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이름만으로도 무시무시한 ‘긴급조치’에 의해 국가를 비판하는 말 한마디라도 입 밖으로 내뱉는 사람은 무차별적으로 감금되고 잔인하게 고문당했습니다. 서슬이 퍼렇게 서있던 유신체제 하에서 국민의 기본권과 최소한의 인권은 그렇게 무참히 짓밟혔습니다. 

 그 후로 36년이 흘렀습니다. 지난 수 십 년의 세월동안 지하에 묻혀 있던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당시의 피해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들을 대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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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변의 ‘긴급조치 무죄판결 및 재심소송 등에 관한 설명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신 연세 지극한 어르신들은 지팡이를 짚고 있었지만 그 발걸음에는 힘이 가득했습니다. 멀리 지역에서 올라왔기에 여관에서 하룻밤 묵어야했지만 그들의 모습에는 여느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이 있었습니다. 국가에 의해 박탈당했던 자유를 되찾고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한 발짝 앞으로 내딛게 하겠다는 열망이, 바로 그들의 힘이었습니다. 그들이 숨죽이며 참아왔던 가슴 속 외침이 정동 프란체스코 교육회관을 가득 메웠습니다. 설명회가 진행된 2시간 내내 설명회장 안의 열기는 차가운 바깥 날씨가 무색할 정도로 무척이나 뜨거웠습니다.
 “긴급조치 위헌판결은 이 시대의 반민주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싸움의 시작이다!”라고 외치신 백기완 선생님의 강한 목소리에서, “진실은 항상 승리한다.”고 하신 이해학 목사님의 차분한 어조에서, 그리고 “우리는 이 땅에 민주주의를 정립한 사람들”이라 강조한 오종상 선생님의 담담하지만 강인한 말씀에서 당찬 결의가 느꼈습니다. 이런 분들이 함께 하고 있기에, 민변의 긴급조치 변호인단도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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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신체제의 시녀노릇을 하던 대법원이었기에, 이번 긴급조치 1호에 대한 위헌결정과 오종상 씨에 대한 무죄판결은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대법원 스스로가 지난 과오를 깨닫고 바로잡았다는 사실을 물론이고 많은 이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다시 일으켜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민변은 그분들의 열망을 현실로 이루려 준비하고 있습니다. 민변은 먼저, 향후 긴급조치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재심 및 형사보상절차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현재 재심 등의 절차진행에 필요한 서류들을 우편으로 접수중이고, 추후에 별도의 진술서 확보 작업을 할 계획입니다. 또한 현재 계류 중인 유신헌법 제53조와 긴급조치 1호, 2호, 9호에 대한 헌법소원을 진행하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수 백 명의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일괄적 구제를 위해서 특별법의 입법 활동을 꾸준히 지속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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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급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의 현실화는 이제야 본격적인 출발선에있습니다. 민변은 계속해서 긴급조치 피해자들과 함께 인간의 기본권이 침해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에 앞장 설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이 사회의 민주주의를 바로세우고자 하는 다른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또 다른 불씨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