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왜냐면

[왜냐면] 대한민국 정치에 농업·농민은 없는가 /
  정기환

등록 : 2012.03.12 19:35 수정 : 2012.03.12 19:35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FTA 확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농업을 대변해 줄 농업 전문가가
대한민국 국회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번 공청회는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생각합니다. 추가로 공청회를 열 계획은 없습니다.’ 지난달 2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렸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공청회가 파행을 거듭하며 졸속으로 마무리된 뒤 통상교섭본부 고위 관계자가 한 말입니다. 농민의 생존권은 물론 국민의 식량주권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상을 점거하고 한-중 에프티에이 반대를 주장했던 농민의 외침이 국민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졌는지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공천은 항상 시끄럽고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원칙대로 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의 공천 권한을 가진 힘 있는 분들이 갖가지 기삿거리가 넘쳐나는 요즘 일관되게 하는 말씀입니다. 물론 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에서 일했던 의원들이 줄줄이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농민의 마음은 씁쓸합니다. 농업·농촌이 ‘힘’ 있는 분들의 마음 한구석에라도 자리를 잡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지난달 27일, 정해진 기한을 넘기고 선거관리위원회의 중재안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선거구 획정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전체 의석수는 역대 최대인 300석으로 1석 늘어났지만, 농어촌 지역구는 오히려 2곳이 줄어들었습니다. 애초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제시한 안은 인구 상한선에 못 미치는 도시지역 12개 선거구를 7개 선거구로 통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야가 추천한 국민대표들이 각 당의 입장을 반영하고 공청회를 통해 국민들의 뜻도 수렴해 만장일치로 만든 단일안이었습니다. 이것이 국회를 거치면서 힘없는 농촌지역 선거구 2곳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결정되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만 놓고 본다면 이번 4·11 총선에서 농업·농촌·농민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미 선거가 한창이라고 봐야 하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주요 정당들이 농정공약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청년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거나 신세대를 거물급의 대항마로 내세워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을 부러워한다면 농사짓는 어른들이 잘못된 것일까요?

지난해 한-미 에프티에이 국회 비준을 앞두고 원내대표와 정책위원장이 농민단체 사무실로 총출동했던 여당이었습니다. 1월에는 인재영입위원장이 각 농민단체를 찾아 ‘농업계 인사를 적극 추천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은 경우는 아직 없습니다.

야당에서는 한-미 에프티에이 발효 중지 및 전면적 재협상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총선에서 최대 쟁점으로 삼아 여당과 대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프티에이로 큰 피해를 보는 농민에 대한 배려를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오보라고 했지만 비례대표 후보 초안이라며 공개된 문건에서 농업계 전문가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농민과 아픔을 함께하지만 그들의 대변자는 함께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야의 지역구 의원 공천에서 그동안 정치권에서 소외받아 왔던 농업계가 더욱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제 비례대표 공천이 시작됩니다. 에프티에이 확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농업을 대변해 줄 농업계 전문가가 대한민국 국회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세계는 식량·에너지전쟁의 시대가 되어가고 있으며 세계적인 이상기후 현상은 불안정성을 더욱 키우고 있습니다. 대안을 내고 정부를 감시할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각 당은 전문성과 직능대표성을 갖춘 농업계 인사를 전략공천해 농업이 살아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농민단체의 하나 된 요구가 농업계 내부의 울림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정기환 국민농업포럼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