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 협동조합일까?

[협동조합이 대안이다]<7>

박승옥 한겨레두레공제조합연합회 공동대표 

기사입력 2011.09.15 13:46:00

   

     


한국 농협은 협동조합이 아니다!
 2007년 대법원의 판결

2006년 5월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이 검찰에 체포되었다. 서울 양재동 농협중앙회 사옥을 현대자동차에 팔면서 시세보다 약 700억 원이나 낮게 팔고 수억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였다. 1988년 농협중앙회장을 정부 임명직에서 선출직으로 바꾼 이래 초대 한호선, 2대 원철희 회장 등이 비자금 조성과 횡령으로 구속된 데 이어 역대 민선 회장들이 모두 구속되는 진기록이 수립되는 순간이었다.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의 유죄 여부 쟁점은 농협 임직원이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인가 아닌가였다. 농협의 주장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죄는 공무원과 정부관리 기업체 임직원에게 적용되는데, 농협은 민간단체이기 때문에 특가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1심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고, 정대근 회장은 석방되었다. 그러나 2심에서는 유죄가 선고되어 정 회장은 다시 법정 구속되었다.

2007년 11월 30일 대법원은 농협 임직원은 공무원에 준하는 신분이라는, 농협 역사상 길이 남을 확정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농협은 법률상으로는 정부산하단체의 자격을 확실하게 얻게 되었고, 구소련과 북한의 농협과 똑같이 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을 쓰고는 있지만 협동조합이 아니라 사실상 어용 관제단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

협동조합이란 민간에서 자유인들이 스스로 만든 상부상조의 결사체이다. 정부가 협동조합 임직원을 임명하거나 협동조합 운영을 관리 통제하는 순간, 그 협동조합은 이미 협동조합 정체성을 잃어버린 관변단체로 전락하고 만다.

한국의 농협은 자유인으로서의 농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스스로 운영하는 결사체로서의 농업협동조합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농협 임직원들은 농민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는 기생충들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로 도덕적으로 타락해 있다. 농협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의 연봉은 2억 원에 가깝고, 기타 각종 수당과 성과급, 임원 자녀 특별 채용 등 과도한 특혜 등은 해마다 국정감사 때만 되면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로 농민들의 분노를 일으키기도 한다.

정작 농민들은 가구당 3천만 원에 이르는 부채에 신음하면서 자살하는 농민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농협의 임직원들은 그들만의 배부른 잔치를 즐기고 있는 셈이다.

농협 임직원들을 위한, 농협 임직원들만의 풍요로운 먹자판!

▲ 농협 홈페이지 ⓒ프레시안

농협은 현재 농협중앙회 산하에 968개의 지역농협, 118개의 지역축협, 45개의 품목농협, 24개의 품목축협, 12개의 인삼농협 등의 단위조합을 포괄하고 245만3177명의 농민조합원(농가인구 312만 명)이 가입해 있는 거대한 공룡조직으로 성장해 있다. 2010년 현재 1만3644명의 임직원과 25개의 자회사를 거느리는 재벌기업으로서 자산규모는 약 230조 원, 신용사업의 총 여신액만 해도 140조 원에 이른다. 2003년 2월 4일 대통령 취임 직후 전국 순회 토론회 중 강원지역 토론회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농협이 힘이 센지 대통령인 내가 힘이 센지 모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농업 분야와 지역사회 차원을 뛰어 넘어 중앙정치권까지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 농협의 신경분리 또한 무늬만 신경분리일 뿐 농협중앙회의 지배구조는 전혀 달라진 바가 없다. 오히려 농협중앙회와 금융지주회사는 조합원 이익에 우선해 주주 이익을 우선하는, 협동조합 정체성으로부터 더욱더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애초에 농협은 출생 자체부터가 박정희 군사정부가 만들어 낸 관제 농협이라는 사생아였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1961년 8월, 당시 군사쿠데타 세력이 만든 무소불위의 초 헌법적 기구인 국가재건최고회의는 기존의 농협과 농업은행을 강제로 통합하여 종합 농협을 만들었다.

이때 군사쿠데타 세력은 단위조합과 시군조합, 중앙회 임직원을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농민을 감시하고 착취하던 총독부 관제조직이었던 금융조합과 식산계, 산업조합, 대한농회에서 일하던 친일 부역자들을 임명하였다. 이는 군사정부의 종합농협 설립 목적이 일제와 똑같이 농민 통제와 수탈이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한다.

사실 1950년대 한국 농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 협동조합을 조직하려는 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 결과 1950년대 내내 읍면 단위에서 수많은 이동조합이 조직되었고 1960년에는 이동조합의 수가 무려 18,906개에 이르렀다.

그런데 군사정부는 이런 농민들 스스로 자발적인 이동조합을 해체하고 친일부역자들을 앞장세워 농민 억압과 수탈의 관제기구로써 종합 농협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 종합농협이 다름 아닌 오늘날 농협의 뿌리이다.


한국의 역사는 농민들의 협동공동체 역사였다

한국에서는 고대부터 두레, 계, 보(寶), 도(徒), 접(接), 모꼬지 등 다양한 이름 아래 다양한 공동체 조직이 존재해 왔다. 특히 촌회, 향회, 촌계, 동계는 지역 자치 공동체로서 기능했고, 공동체가 남김 없이 해체되고만 지금에도 여전히 그 명맥이 남아 있는 곳이 더러 있을 정도이다.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전통 농업사회란 공동체 노동이 없으면 유지가 불가능한 지역공동체 사회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내내 소작권은 영소작권(永小作權)이라고 불릴 정도로 양반지주라고 해도 함부로 소작권을 옮기지 못했다. 소작료도 3할이 보통이었다. 두레라는 농민들의 막강한 공동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참고로 국가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일제시대 내내 소작료는 살인의 수준이 7~8할이었다. 일본제국주의가 한국을 근대화시킨 은인이라고 버젓이 내놓고 떠드는 자칭 뉴라이트 매국노 학자들이라니!

자본주의화가 진전되고 있던 일제시대에도, 그리고 압축 산업화가 본격화되던 1970년대 이전까지 농촌에서 협동조합운동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던 것도 이 같은 농업사회의 공동체 전통이 자연스럽게 일반 민중들의 공동체 정신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의 농협운동은 1907년의 지방금융조합을 필두로 이후 동경 유학생을 중심으로 결성된 협동조합운동사(協同組合運動社), 천도교의 조선농민사, 기독교의 농촌협동조합 등에 의해 전국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져 갔다. 식민지 시대 농협운동은 식민지 예속 경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조선인들 스스로 벌인 경제 자립운동이었으며 민족운동이었다. 당연히 일제의 극심한 탄압 아래 1930년대 중반부터는 해산되고 말았고 협동조합 운동의 이념과 운동 흐름은 지하로 잠복할 수밖에 없었다.

해방 이후 협동조합운동은 주로 전국농민조합총연맹의 협동조합전국연합회를 통해 전개되었다. 우익인 대한독립농민총연맹 또한 협동조합운동사의 중심인물이었던 전진한을 중심으로 지역단위 농민 후생조합을 조직하는 등 활발하게 협동조합 운동을 벌였을 정도이다. 새로운 국가 건설의 희망 속에서 자유인들의 결사체로서의 협동조합 운동이 남과 북 모두에서 우후죽순으로 솟아올랐던 것은 토지개혁과 함께 그만큼 농민들의 강력한 요구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농협을 농민의 협동조합으로

▲ ⓒ프레시안


2012년은 세계협동조합의 해이다. 협동조합이 새로운 대안의 경제로서 새롭게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인식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2012년, 아마도 절대다수의 농민들은 농협이 협동조합의 정체성에 맞게 농민의, 농민에 의한, 농민을 위한 협동조합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실제로 조합장 직선제 실시 이후 많은 지역농협들이 농협의 개혁을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이 얼마만큼 농협을 제대로 된 협동조합으로 변화시켰는지는 매우 회의적인 것이 또한 사실이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 가입한 한국의 협동조합은 농협을 비롯하여 산림조합, 새마을금고, 수협, 신협, 아이쿱 생협 등 6개가 있다. 이들은 한국협동조합협의회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는데, 총 조합원 수만 자그마치 2000만 명에 달한다. 이 협의회의 대표는 농협중앙회 회장이다. 그만큼 농협의 힘은 막강하다.

2012년 세계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농협이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다시 회복하는 각성의 해가 될 수 있을까. 농민들과 농협노조의 각성과 성찰을 두고 볼 일이다.

농민의 고혈을 빠는 관제기구의 기생충 같은 삶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국가권력이 변화하고 숙주가 구충제를 삼키면 그 날로 밝은 햇빛 아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솔직히 그런 삶은 제대로 된 양심의 자유에도 어긋나는 삶이다.

세계협동조합의 해를 앞두고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이 논의되고,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지금 있는 협동조합부터 민간 스스로의 자율적인 결사체로서 협동조합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겨레두레공제조합연합회

한겨레두레공제조합연합회는 2010년 2월 12개 지역공제조합이 모여 출범하였으며, 2009년부터 2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10년 2010년 12월 5일, 고 리영희 선생님장례식을 주관하면서 공식 활동을 시작했다. 한겨레두레공제조합은 바가지와 덤터기, 폭리와 리베이트로 복마전이 되어버린 상조회사의 주식회사 영업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대체하는 직거래 공동구매의 상포계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는 전국에 걸쳐 16개 지역공제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조만간 장례산업과 비슷한 구조의 예식산업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바꾸어 혼인계를 시작할 예정이다.